평생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을 꿈꿨던 작곡가 슈베르트. 19세기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부와 명성의 상징이었다. 가곡의 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600여 편이 넘는 주옥같은 가곡을 작곡했던 슈베르트는 같은 성악적 장르라고 볼 수 있는 오페라 작곡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슈베르트의 수많은 스케치와 미완성 오페라들로 미루어보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에도 불구, 짧은 단편 가곡과는 다른 긴 호흡이 중요한 극 음악 작곡에서 엿보이는 구조적 결함과 비즈니스와 흥행의 논리가 깊숙이 작용하는 오페라 업계에 발을 들여놓기엔 낯을 가리는 소심한 성격이 걸림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슈베르트의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를 소개하며 슈베르트가 오페라 장르에 실패했던 이유에 대해 "음악은 아름답지만, 오페라의 형식과는 괴리가 있다"라는 평을 내놓은 바 있다.
1820년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에서 초연되었던 '마술하프'와 같이 나름 반응이 괜찮았던 오페라도 있었지만 그의 오페라는 대부분 상연되지 못했다. 슈베르트의 가장 잘 알려진 오페라 중 하나인 '피라브라스'는 음악적인 내용에 있어서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극적 완성도가 결여되어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웨일즈 국립 오페라의 에이든 랑 대표는 이 오페라에 대해 " 슈베르트가 걸출한 송라이터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두 시간 반 동안 고작 2개의 아리아를 제외하고 끊임없이 연속되는 앙상블 형태 음악은 음악적 전개에 있어 훌륭하지만 오페라 연출에 있어서는 매우 힘들다"라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그가 작곡한 11개의 완성된 오페라와 수많은 미완성 형태의 극 음악은 슈베르트의 오페라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데 여기 전해내려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 로시니는 19세기 유럽 오페라계를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엔나에서도 그는 이미 유명 인사였는데 1822년 로시니가 비엔나를 처음 방문하기 전 1817년, 로시니의 작품들이 비엔나 무대에 올랐고 차례로 흥행에 성공하며 그의 인기를 입증했다. 로시니의 대표적인 오페라 '탄크레디(Tancredi)' 공연에 참석했던 슈베르트. 평소 로시니의 음악적 역량은 인정했지만 로시니의 대중적인 음악적 스타일을 비꼬곤 했는데 그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오페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자 심기가 불편했던 터. 과대평가라고 생각한 슈베르트는 로시니 스타일의 음악은 단시일에 작곡이 가능하다고 공언하며 결국 그의 친구들과 비싼 와인을 내걸고 내기를 하게 되었고 로시니 스타일을 음악에 고스란히 담은 2개의 오페라 서곡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작품들은 '이탈리안 스타일 서곡(Overture in the Italian Style)'으로 불리며 작품 번호 D590, D591를 부여받았고 이태리적 감성을 담은 유니크한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페라로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던 로시니의 입지가 부러웠던 슈베르트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기도 하는 짠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가곡에서 드러나는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적인 악상과 극적인 완성도가 결합한 슈베르트의 오페라가 존재했다면 오늘날 오페라 극장의 주 레퍼토리로 명맥을 이어갔을 것이다. 현재 이탈리안 스타일 서곡을 비롯하여 그가 작곡한 상당수의 오페라 서곡들이 독립적으로 클래식 레퍼토리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클래식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탈리안 스타일 서곡 D.591을 추천한다. 고전시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느린 서주로 시작하지만 이내 경쾌함을 탑재한 현악 반주에 귀에 쏙 박히는 이태리 감성의 멜로디가 매력적인 알레그로가 대조를 이룬다. 다양한 악상기호를 대거 곳곳에 안배함으로써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로시니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점진적인 크레센도 (로시니 크레센도) 또한 슈베르트는 놓치지 않고 음악 속에 잘 활용히고 있다. 다소 과장된 음악적 표현들이 로시니의 음악을 유희적으로 모방한 흔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