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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덴차의 변천
편집부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2-12-02 14:33
카덴차의 변천

독주자와 악기의 매력을 오케스트라와의 조화 속에 두드러지게 음미할 수 있는 협주곡은 클래식 음악에서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입니다. 바로크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이 매력적인 장르에 그들의 개성 넘치는 흔적을 남겨놓았지요. 모든 협주곡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르에서 맛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카덴차(Cadenza)입니다. 카덴차는 독주자가 (혹은 독주 그룹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부분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의 첫째 악장의 끝 무렵에 배치되며 독주자는 곡의 테마들을 화려하게 변주하면서 청중에게 자신의 실력을 각인시키지요.

원래 카덴차는 기악곡이 아닌 성악곡에서 비롯되었는데 성악가가 아리아의 마지막 부분을 즉흥적으로 화려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즉흥적으로’ 곡의 테마를 변주할 수 있는 능력은 카덴차가 협주곡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고전 시대에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당시의 카덴차는 기본적으로 작곡가의 영역이 아닌 연주자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지요. 단, 독주 악기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일 경우에는 작곡가가 작곡 단계에서 카덴차를 완성하곤 했는데 이 또한 당시의 카덴차에서 즉흥 연주가 중요했음을 시사합니다. 독주자가 둘 이상일 경우 즉흥 연주의 합을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고전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많은 피아노 협주곡 음반들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카덴차를 연주했다고 음반에 표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즉흥 연주 실력 또한 탁월했고요. 그가 남긴 많은 피아노 협주곡들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모차르트는 카덴차를 작곡할 필요가 없었지요. 총 30곡에 이르는 그의 모든 피아노 협주곡 중 독주 피아노가 둘 이상인 협주곡 두 곡(KV 242, KV 365)을 제외하고 카덴차가 작곡 과정에서 만들어진 곡은 23번 협주곡(KV 488) 단 하나입니다. 왜 모차르트가 이 곡에서는 카덴차를 함께 작곡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레빈(R. Levin, 1947- )은 이 곡이 모차르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연주를 위해 작곡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지요.

현재 남아있는 모차르트의 카덴차들은 많은 경우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카덴차를 이런 방식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예시를 모차르트가 직접 제시한 것이었지요. 기본적으로 즉흥으로 연주해야 했던 당시의 카덴차 악보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렇듯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거나, 혹은 실력이 부족한 연주자를 위해 작곡가가 도움을 주는 과정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카덴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은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 협주곡 5번(Op. 73)입니다. 1808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작곡된 이 협주곡의 첫 악장 후반부에는 당시의 일반적인 협주곡처럼 “이제 카덴차가 등장하는구나” 하고 예상되는 지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 부분을 연주자가 자유롭게 카덴차를 연주할 수 있도록 비워두지 않고 직접 작곡한 다음 중요한 지시를 덧붙입니다. “카덴차를 연주하지 말고, 다음 부분을 바로 이어 연주할 것” 베토벤이 작곡한 이 ‘다음’ 부분은 피아노가 혼자 카덴차처럼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스트라가 합류하며 절정으로 치닫지요. 이를 통해 베토벤은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 버렸는데 이는 곡의 첫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곡은 당대로서는 이례적으로 시작하자마자 피아노의 카덴차가 등장합니다. 베토벤이 음표 하나하나 모두 세세하게 적어놓은 짧은 길이의 카덴차인데, 곡의 구성상 연주자에게 변형의 가능성을 일체 허락하지 않지요. 

카덴차를 연주하지 말고, 다음 부분을 바로 이어 연주할 것”이라는 베토벤의 지시 사항에서의
그 ‘다음 부분’에 해당되는 부분. 베토벤의 원본을 깨끗하게 옮겨 적은 악보. (출처: Beethoven-Haus Bonn 홈페이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에서처럼 작곡가가 대체 불가능한 카덴차를 직접 작곡하는 경향은 이후 대세가 됩니다. 카덴차 분야에서 베토벤처럼 후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곡가로는 멘델스존(F.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을 들 수 있겠습니다. 1844년에 완성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Op. 64)의 첫 악장에서 카덴차는 악장의 끝 무렵이 아닌 중간에 위치하는데 이후 차이코프스키(P. I. Tchaikovsky, 1840-1893)와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7)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그리고 프로코피예프(S. Prokofiev, 1891-1953)의 피아노 협주곡 2번(Op. 16)에서 악장의 중간에 위치하는 카덴차를 볼 수 있지요.

카덴차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작곡가는 바로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 1906-1975)일 것입니다. 각각 4악장으로 구성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Op. 77)과 첼로 협주곡 1번(Op. 107)의 카덴차는 유명한데, 첼로 협주곡에서는 3악장 전체가 카덴차이기도 하지요. 긴 호흡 속에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처절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두 곡의 거대한 카덴차는 이 분야의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계속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현재에 다다른 카덴차. 카덴차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는 어떤 매력을 지닌 곡들이 탄생하게 될까요? 카덴차의 역사를 빛낼 곡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추천영상: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입니다. 5분이 넘게 소요되는 거대한 카덴차(3악장)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거대하다는 인상은 단순히 긴 길이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안에 담겨 있는 음악의 극적인 흐름이 워낙 대단하기에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요하게 시작하여 점차 격렬해지며 4악장으로 이어지는 이 카덴차에서 악기 한 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에너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을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dxI2IO7qTpE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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