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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소리길을 사연많은 무대용 뮤지컬로 재연해내다_뮤지컬 서편제.  
편집부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2-08-12 11:09
한 많은 소리길을 사연많은 무대용 뮤지컬로 재연해내다_뮤지컬 서편제.
 
전통문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서편제’다. 소리길을 찾아 방랑하는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자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서편제는 판소리 창법의 한 유파를 말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던 박유전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받은 것으로, 주로 전라도 광주와 나주, 강진, 해남 등지에서 인기를 누렸다. 서편제라는 이름은 이들 지역이 섬진강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부드럽고 구성지며 애절하게 소리의 끝을 길게 이어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활달하고 우렁찬 동편제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사진제공 PAGE1>

대표적인 서편제 가락이 바로 ‘심청가’다. 특히, 심봉사가 딸을 만나 마침내 눈을 뜨게 되는 부분의 구성진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도 엔딩 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인 동호와 송화의 재회 장면에 등장해 우리 가락의 맛을 멋들어지게 재연해냈다.
무대용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에 속하지만, 스크린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볼거리로 치장돼 있다고도 인정할 만하다. 아무래도 ‘소리’를 듣고 ‘음악’을 즐기는 재미는 현장 예술인 공연이 기계적 재생의 영상보다 날것 그대로의 ‘감칠맛’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슬프게 꺾어지고 서글프게 이어지는 노랫가락에 넋을 잃고 눈물을 떨구게 되는 재미는 이 작품이 지닌 최고의 매력이다. 우리 소리가 객석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가 무명의 신예 국악인이었던 오정해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면, 무대는 초연부터 참여했던 이자람과 차지연 덕분에 완성이 됐다. 특히 이자람은 그토록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크기의 소리와 에너지, 선한 기운마저 뿜어져 나오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비를 따라 소리를 배우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극적 전개는 두말할 나위 없고, 마침내 눈이 멀어 가슴에 한을 품고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나오는 감동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유봉의 죽음은 이 뮤지컬의 백미다. 소리에 한을 심어주려 했던 아비는 딸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들고, 송화는 그런 유봉을 허무히 죽음 너머로 떠나보내게 된다. 상여가 등장하고 송화는 울음인지 아니면 원망 섞인 비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절규를 쏟아낸다. 마음에 '한'을 담아 소리를 완성하고자 했던 소리길 여정이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다다르는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다. 무대는 이 극적인 장면을 다시 현대적 양식의 무용극으로 풀어 재구성해낸다. 남녀노소에게 모두 소구하는 명장면이지만 특히 부모를 여읜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손수건을 훔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설움과 분노, 회한과 서글픔의 감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무대라서 더욱 북받쳐 오르는 서글픈 희열이자 감동이다.

2010년 초연 무대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네 번의 시즌이 막을 올렸다. 아무래도 한번 만들면 다시 고칠 수 없는 영상물과 달리 공연을 거듭하면서 더욱 치밀해지고 꼼꼼해지는 무대의 속성이 여러 차례 앙코르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이게 된 배경이 됐다. 덕분에 올초 마니아 관객들 사이에서는 가장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 공연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올해 올려지는 다섯 번째 마지막 앙코르 공연에선 이자람과 차지연, 유리아, 홍자, 양지은, 홍지윤의 여섯 배우가 번갈아 무대를 꾸민다. 앞선 세 배우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무대적 완성도를 이뤄냈던 여배우들이라면, 뒤의 세 배우는 ‘미스 트롯’을 통해 가창력을 검증받았던 경우들이다. 국악을 배웠거나 전공이었던 경우들도 여럿 눈에 띈다. 어느 배우가 등장하는가에 따라 음악적 감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우려되지만, 여러번 객석을 찾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받게 된다. 여러 차례 무대를 꾸몄던 원숙함을 기대한다면 이자람이나 차지연을, 신선한 변화나 실험을 원한다면 다른 배우들을 도전해보길 권한다.



국악을 적절히 활용했지만, 무대에 등장하는 음악은 사실 그 이상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돼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맨발의 디바’로 유명한 이은미의 노래들을 만든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며 음악적 경계를 확장시킨 탓이다.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바로 그가 만든 이 작품 최고의 선율중 하나다. 극장을 나서며 한숨 섞어 흥얼거리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작곡가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뮤지컬이 흘러간 명작영화나 예전의 히트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일차적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콘텐츠를 무대로 재연하는 것이니 관객 입장에서는 그만큼 신뢰할 수 있을 테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홍보의 부담이나 흥행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마련이다.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거양득의 마케팅 전략이자 상업자본의 선택인 셈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적용이 용이한 무대예술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에 나름 사연도 있다. 지금은 PAGE1이 제작사로 참여하고 있지만 초연이 되던 해 명을 달리했던 古조왕연 프로듀서의 한 많은 인생은 특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좋은 작품으로 성장한 무대를 봤다면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싶기도 하다.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완성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 아픔과 희생이 뒤따라야 하나 싶어 숙연해진다. 시장은 늘어나고 돈 버는 인기배우들이나 해외 원작자들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이들의 사정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보여 더 안타깝다. 서편제의 소리길이 우리 창작 뮤지컬계의 사정과도 묘하게 닮은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다. 좋은 우리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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