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작년은 거의 안 물리고 지나갔다. 올해는 벌써 여러 번 모기에 물렸다. 정확히 언제 물렸는지는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해 모기는 물지 않는다. 사람의 피부에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를 찔러 넣고 흡혈한다. 이렇게 찔러 넣을 때 바로 따끔한 걸 느낄 수도 있지만 모르고 지나갈 때가 더 많다. 몇 분 지나서 물린(찔린) 곳이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전날 물린 곳이 다음 날 부어오르며 간지럽다. 하지만 48시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언제 물렸는지는 내 피를 빨고 사라진 모기를 잡아도 알아내기 어려운 문제이다.
여러 사람 중에 왜 굳이 나를 물었을까도 알아내기 쉽지 않다. 모기는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피부를 통해 발산하는 열로 사람의 존재를 감지하고 다가온다. 체취에 따라 모기가 더 잘 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미식가 모기라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찔러보면서 누가 더 맛있나 봐가면서 물고 다닐 여유는 없다. O형 혈액형이 모기에 잘 물린다는 일본 연구 결과가 한 건 있긴 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 현재까지 사람의 피부에서 찾은 냄새 물질이 500종 이상이다. 이 중 어떤 물질이 나를 모기에게 더 인기 있는 존재로 만든 것인가는 아직 연구 중이다.
모기 종마다 선호하는 냄새가 다르기도 하다. 모기 기피제는 모기가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거나(DEET) 모기가 냄새를 감지하기 어렵게 만들어서(이카리딘) 모기에 물리는 걸 막아준다. 반대로 모기가 좋아하는 냄새 물질로 모기를 유인하는 장치도 언젠가는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모기에 물리면 간지러운 것은 모기 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기 침 속의 화학물질에 대한 면역 반응은 대개 간지럽고 붓는 정도로 그치지만 아주 드물게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킬 수도 있다.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나고 목과 기도가 부어올라 호흡곤란이 생길 수 있는 치명적 반응이다. 하지만 모기 물려서 아나필락시스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벌에 물렸을 때 더 위험하다.
일단 모기에 피를 빼앗긴 걸 알아차리고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긁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가려워서 자꾸 긁으면 2차로 세균감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이 없을 때는 우선 얼음 팩을 천으로 싸서 부은 곳을 냉찜질해주는 게 좋다. 냉찜질은 가려움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고 혈관을 수축시켜 부기를 빼주는 효과 면에서도 유익하다. 뜨거운 숟가락은 절대 피하자. 모기 침에는 포름산이 없고 피부에 뜨거운 숟가락을 가져다 댄다고 그런 성분이 분해되는 일도 안 생긴다. 그냥 화상을 입을 뿐이다.
모기에 물려도 안 가렵고 별 티도 안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굳이 약을 바르지 않아도 며칠 지나 저절로 사라진다. 하지만 자꾸 가려울 때는 긁는 것보다 얼른 약을 쓰는 게 좋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에는 항히스타민제(디펜히드라민), 국소마취제(디부카인), 반대자극제(살리실산메틸, 멘톨, 캄파)가 들어 있다. 이들 성분은 통증, 가려움증을 줄여준다. 벤잘코늄염화물 성분의 의약외품은 의약품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니 제품을 구매할 때 주의해야 한다.
30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어린이용 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캄파 같은 성분이 드물지만, 경련을 유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자꾸 긁는 걸 막기 위해 붙이는 약(플라스타)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30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사용을 피한다. 생후 30개월까지는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언제 떼어서 입에 넣을지 모른다.
약을 발라줘도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먹는 항히스타민제를 추가하거나 히드로코티손과 같은 약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해볼 수 있다. 하지만 세균감염이 의심되거나 통증이 심할 때는 먼저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해야 한다. 모기는 기피제를 사용해서 안 물리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물려서 가려울 때는 긁지 말고 약을 쓰자. 뜨거운 숟가락은 잊자. 적재적소에 약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센스 있는 현대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