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따르면, 건강(健康, Health)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1)신체적, (2)정신적, (3)사회적, (4)영적으로 완전한 안녕(安寧) 상태"를 뜻한다. 즉,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 ‘일상생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 개인적·사회적 대처능력을 강조하는 입체적, 긍정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고, 더 쉽게 표현하면, 맛있게 식사할 수 있고,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숙면을 취하며, 기분이 항상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조화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위 4가지 영역에서 자신이 모두 ‘건강하다’고 선택한 사람은 6.7%에 불과하다. 이렇듯 건강이란 개인간에 차이가 크고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여 불평등할 수 밖에 없고, 심지어 학문적 연구에 따라 소위 ‘건강불평등 설명 모델’까지 개발되었다.
회색의 격랑(Gray Tsunami)
노화와 노쇠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노화(Aging)란 소화기나 신경계 등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인데 나이 탓일 수도,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 노쇠(Frailty)란 노화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과도하게 진행될 때를 말하며 ‘허약’이라고도 불린다. 노화 자체뿐 아니라 불충분한 영양섭취, 운동부족, 각종 질병, 복용약물, 사회적 고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몸이 쇠약해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든이 넘어서도 매사에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사람과 곁에서 도우미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힘든 60대간의 차이는 노화가 아닌 노쇠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면 노인증후군, 노쇠증후군, 또는 노인병증후군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필요하다.
노인병증후군
노인병증후군(geriatric syndrome)이란 노쇠한 노인에서 다발적 원인이 섞여 정상기능은 감퇴되고상황에 따른 위험요인에 취약해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병적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종국에 노인의 이환율(morbidity)과 사망률(mortality)을 높이며, 고령, 인지기능 저하, 기능손상, 이동성 장애를 공통적으로 발생시키는 위험요소이며, 결국 노인의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인지기능, 운동기능, 감각능, 정신·사회적 기능 등과 같은 4가지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장애는 1개 이상 영역으로 확장되어 여러 장기(organ)에 악영향을 미치고, 만약 고령환자가 합병증까지 앓고 있을 때는 의료비용의 부담이 더욱 높아진다. 또한 노인병증후군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 건강상태, 질병증상, 약물이상반응에도 영향을 받는다. 예로써, 뇌졸중은 음식물을 삼키는데 문제를 야기하며 적절한 영양섭취 또는 약물치료를 위해 삶의 변화를 강요한다. 노인은 약물부작용에 매우 취약하며, 현기증 같은 부작용이 생기면 골절, 이동장애, 만성통증 및 결국 삶의 질 저하를 유발시키는 낙상(falls)에 빠질 수도 있다.
Geriatric Syndrome 이란 용어는 1909년부터 사용되었으며, 20세기 노인학의 핵심개념으로 자리잡혀있다. 처음에는 주요 4가지 특징(the four geriatric giants)인 (1) 부동성, (2) 불안정성, (3) 요실금, (4) 인지장애가 거론되었으나, 곧이어 (5) 근감소증과 (6) 노쇠(frailty)가 추가되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노인병 전문가의 견해를 바탕으로 (7) 치매, (8) 섬망, (9) 청각 또는 시각장애, (10) 영양불량, (11) 노쇠, (12) 거동장애, (13) 보행장애, (14) 욕창 등이 포함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도부터 한국병원약사회가 주관하여 노인전문약사 자격을 부여하였고, 서울시약사회에서는 2016년도부터 노인을 위한 약물치료서비스 전문교육과정을 실시함에 따라 우리나라 약사와 약업계가 노인약학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정작 노인에 대한 기본 이해의 수준은 아직도 부족한 현실이다(그림 1).
노인병증후군 중에서 연하곤란, 시력 및 청력 손상, 어지럼증은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데, 나이가 들면서 동반되는 생리학적 변화가 주요 원인이지만 노인이 보유한 만성질환, 복용약물도 원인이고, 이런 증상이 또 다른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연하곤란은 음식물 등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10~30%라고 추산되며 장기요양시설 환자의 유병률은 50%까지 더 높다. 구강인두 연하곤란(oropharyngeal dysphagia)과 식도 연하곤란(esophageal dysphagia) 두 가지로 분류되며, 합병증으로 질식, 흡인성 폐렴 및 영양실조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약사의 역할은 이런 환자를 위해 적절한 약물투여 및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형제 분쇄투여나 액제, 경피제를 추천하거나 액제 투여 시 비활성 물질이 많이 투여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분쇄해서 투여할 경우도 환자가 복용이 용이하게 점도증강제 사용을 추천한다. 또한 분쇄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약물을 구분하여 교육하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다.
시력 및 청력 상실 같은 감각기능 저하는 노인의 불안, 우울 같은 정서적 고통뿐만 아니라 독립생활을 방해하여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시각장애는 노화에 의한 부속질환으로서 녹내장, 안구건조증, 백내장, 황반변성의 원인이며 약사는 질환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올바른 안약사용교육, 복약지도 시 환자가 보기 쉬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청력장애 환자를 위해서도 조용한 환경을 제공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복약지도를 시행한다.
어지럼증은 노인이 가장 불편해하는 증상으로 시각, 청각, 고유수용시스템 및 전정계 평형감각의문제인 vertigo (빙글빙글 도는 느낌), presyncope (lightheadedness와 같이 갑자기 희미한 느낌을 가지는 불쾌감), disequilibrium (불안정하고 불균형이라고 느껴지는 것) 및 기타 원인에 의한 어지럼증(위 3가지 혼합발현형 포함) 등으로 나눈다. 뇌혈관 질환, 와우각 전정계 질환, 경추장애, 정신신경계 이상, 기럽성 저혈압, 약물 등이 주요 원인이며, 약사는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약물을 판별, 중지, 대체하도록 의사에게 권고해야 한다.
생로병사 후반부의 고통인 노쇠
어떤 사람이 겪는 오늘의 건강상태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행동이 쌓인 결과이며, 또 미래 건강의 원인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건강관리는 더욱 그러하다. 노쇠의 정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측정용 설문 및 평소의 보행속도, 악력(쥐는 힘), 근육량, 치아 검사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노쇠함의 체크항목으로 ①최근 6개월간 5㎏ 이상 체중이 감소했거나; ②팔·다리를 만지면 물렁물렁할 정도의 근육량이 감소했거나; ③열다섯 걸음을 7초 안에 못 걷거나; ④1주일에 3회 이상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⑤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거나 중에서 3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노인병증후군이 의심되고, 1~2가지가 해당되면 노인병증후군 전단계(허약단계)라고 판정한다.
노인병증후군 예방수칙은 다음과 같다. ①현재 보유한 만성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②신체활동을 저해하는 불편감이나 통증 시 즉각적인 치료, ③가능한 1주일에 3회, 1회에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 ④근력운동은 필수이며, 가벼운 아령운동부터 시작, ⑤콜레스테롤에 대한 우려는 잊고 살코기 중심으로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 ⑥많이도 적게도 먹지 말고 골고루 음식물을 잘 섭취, ⑦친구도 사귀고 취미도 만들어서 항상 즐겁게 생활, ⑧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정기점진을 실시, 단골 의사와 약사를 정하여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치료만능문화의 확산을 경계
하지만,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짚고 갈 사안이 있다. 필자가 앞의 글에서 수차례 지적했듯이,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현명한 방안은 단지 오래 살 것이라는 구호나 장미 빛 기대감에 빠질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미래를 공부하면서 형편에 맞춰 개별화된 준비의 일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고령사회를 헤쳐갈 인식 체계와 문화, 보건의료경제적 시스템을 면밀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이른바 ‘치료만능문화”의 범람과 무조건적으로 이를 추종하는 태도인데, 나름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이라는 과학이 보여주는 능력을 신뢰하면 죽음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착각)하면서 평균기대수명이 100년이라는 의학적 꿈이 실현되어 곧 나에게도 혜택이 온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지하면서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행태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치료만능문화’를 요약하자면, (1)영원히 청춘을 유지, (2)젊음의 회복, (3)생물학적 노화의 지연이나 역전, (4)생명의 연장, (5)육체의 불멸 등으로 표현할 수 있고 이를 조장하도록 모든 산업과 기술이 과장되어 있다(그림 2).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며 우연히 고통을 겪거나, 잘 살거나 잘 죽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9988이라고 무작정 건강과 젊음이 높게 평가되고 마치 건강해지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적이고 선(善)인 것처럼 추앙되는 문화가 자꾸 일반화되고 확산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정적 준비(연금 등), 신체적 준비(운동 등), 사회적 준비(친밀 관계 등), 정신적/영적 준비(인생목표 재점검, 헌신과 기여, 평온함 등)에 균형감을 가지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라는 의식이 사회 속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각개 질환에 대한 지식보다는 노인과 노화, 노인병증후군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이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사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하고 역량을 개발하는 노력이 바로 혁신적인 행동인 것이다.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