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제작한 인어공주의 ost 'Part of the world'는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갈망'을 담았으며역시 리디안 모드가 사용되었다.
리디안 모드(Lydian mode)에 대하여
[클래시그널] 코로나 3차 대유행이 현실화 되면서 코로나에 누적된 피로감때문인지 밝고 희망찬 음악을 찾게된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운명' 교향곡 음반에 손이 자주 가는데 다이나믹한 절정이 압권인 마지막 4악장을 골라서 듣곤 한다. 이 발군의 피날레를 듣다보면 항상 기다려지는 대목이 있다. 150마디속에 등장하는 극적인 바이올린 선율인데 장단조와 사뭇 다른 조성감으로 승리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리디안 모드(Lydian mode)'가 돋보인다. 리디안 모드는 장단조가 확립된 바로크 시대 이전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널리 사용 되었던 음체계다. 중세시대에는 음악이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리디안 모드는 교회선법(Church mode)이라 불리는 기본 음체계중 하나이다.
이렇게 케케묵은 중세시대 음체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이 음체계는 현재 클래식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이유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통속적인 잣대로 구획된 장조와 단조와는 다른 음악적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리디안 모드만의 독창성에서 찾을 수 있다.
'리디안 모드'라는 음체계를 들여다보자. 아주 간단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장음계(Major scale)의 네번째음을 반음 상행시킨 것이다.
예를들어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장음계라면 리디안 모드는 '도-레-미-파샾(#)-솔-라-시-도'가 되는 것이다. 고작 '음' 하나에 변화를 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영화음악의 거장 토마스 뉴먼은 옥스포드대 강연에서 "네번째 음에 샾이 더해졌을때 음악이 희망감과 용솟음을 자아낸다"며 그 차이를 역설한 바 있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15번 3악장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병을 앓던 베토벤이 건강을 회복한 후 새 기분으로 3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서두에 적어놓은 글이다. "신에게 바치는 회복한 자의 신성한 감사노래, 리디안 선법에 따라서".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3악장은 장단조라는 음악체계가 자리잡았던 당시 베토벤이 대놓고 과거의 리디안 모드를 소환시킨 악장이다. 코랄형식을 바탕으로 따뜻한 현악기 음색을 통해 감사와 희망의 메세지를 노래한다. 20세기 신낭만주의 작곡가 코른골드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의 첫 시작부분 또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상행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솔샾(#)'을 향하는데 이 음이 바로 반음 올린 4번째음에 해당한다. 벅찬 희망감을 자아내는 첫 솔로에 답례하듯 오케스트라는 같은 멜로디를 두터운 사운드로 반복한다.
기본음 '도' 에서 시작하는 리디안 모드(Lydian mode)
리디안 모드는 영화음악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음악적 단골소재다.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쥬라기공원 OST에 수록된 'Welcome to Jurassic Park'은 좋은 예다. 헬리콥터를 타고 부활한 공룡들과의 첫만남을 위해 섬으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기대감과 설렘은 스필버그 감독의 탁월한 미장센과 함께 리디안 모드가 연출해 낸 음악을 통해 배가(倍加)된다.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 E.T는 어떤가. 집(Home)으로 돌아가고픈 외계인 E.T의 희망은 음악의 기저에 깔린 리디안 모드라는 음악적 장치를 통해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리디안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신비감'은 미지의 외계인과 어울리는 아우라를 더해주었다. 음악적 캐릭터를 uplifting(고양시키는, 희망을 주는)시키는 리디안 모드의 효과는 언제나 예외없이 명징하다.
덧붙여 리디안 모드는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 걸쳐 사랑받고 있는데 재즈도 예외가 아니다.코드가 아닌 모드 기반의 모달 재즈(Modal jazz)를 확립했던 유명한 재즈 이론가 조지 러셀. 그는 즉흥연주의 기본 바탕으로 리디안 모드를 선택했고 재즈에 최적화된 스케일로 간주했다. 리디안 모드에 대한 인식이 시대의 흐름속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이론가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에서 리디안 모드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열망'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이는 리디안 모드의 본질이 시대적 유행과는 상관없이 확고부동함을 말해준다.
장조의 밝은 톤에 고작 네번째 음을 반음 상행시킨 것 뿐인데 토마스 뉴먼의 말처럼 이 작은 모멘텀은 음악에 희망이라는 큰 날개를 달아준다.
이제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 백신과 치료제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음악에서 리디안 모드가 보여준 마법처럼 이 코로나 시대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올 희망의 모멘텀을 기대해본다.
처음엔 '리디안 모드'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얼기설기 다양한 음체계가 얽혀있는 음악의 흐름 속에 간과하기 쉬울 터. 결국 많이 들어보고 접해보는게 지름길이다. 코른골드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첫 시작부분을 들어보라. 상행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상행하여 도달한 음, 바로 '솔샾(#)'에 귀를 기울여보자. 음 하나의 차이가 솔로 선율에 희망과 설렘의 정서를 더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코른골드는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았던 작곡가였던 만큼 특히 영화음악에서 사랑받는 리디안 모드가 협주곡 서두에 등장하는 점이 놀랍지 않다.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