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이나 약사의 현재를 개혁하기에 앞서, 약업현장의 업무범위와 수행방법, 역할과 책임의 한계를 재조정하는 약무혁신을 논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를 위해서 약업현장의 동반자인 약국 직원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현재와 미래의 약무를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자의 관점에서 혁신과 발전을 위한 과제와 현안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의사 보조인력 도입 현황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자이며, 제27조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 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PA; 가칭 ‘진료보조사’) 현황은, 약 1천명이 넘게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 자격조건이나 규정 없이 의사의 지시와 감독하에 활동하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될 소지가 크다.
소속이나 권한, 책임과 규정이 미비하므로 전공의 교육에 부정적이며, 간호사와의 업무영역 마찰, 그리고 보조인력 자신들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점이 지적되었다.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주로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제기되는 합법화 요구는 의료적 이윤추구를 위해 수련의, 전공의 교육의무를 위배하고, 국가면허를 취득한 의사에게만 허락된 수술과 처방권을 보조인력에게 위임하면 의사중심의 국가의료체계를 혼란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진료보조사 제도화의 목적은 무자격 의료행위의 근절과 인력충원을 통한 환자안전의 확보이므로 제도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추진하면 선순환효과도 기대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 현상이 가중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제도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통한 근본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며, 오히려 진료보조사 제도의 신설보다는 전문간호사 등 기존 간호인력의 업무를 확장시켜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있다.
의료계의 주장을 요약하면, (1)(가칭)진료보조사는 일정한 실무경력을 가진 간호사가 소정의 교육과 역량확인절차를 거쳐 국가인정자격을 취득한 뒤 활동하며, (2)배출된 인원의 관리, 교육, 역량확인 절차는 보건복지부 감독하에 의사단체가 운영하되 일정기간마다 재인정절차를 수행하고, (3)근무처를 신고하되 복수의 의료기관에서 동시근무를 금지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이들을 구분하도록 자신을 소개하거나 명찰을 패용하며, (4)의사의 감독하에 모든 업무를 수행하되, 일정한 범위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되, (5)부적절한 의사인력 대체를 방지하기 위하여 업무별로 고용인력 숫자의 한계를 두며, (7)제도의 시행 후 안정화되면, 대국민홍보를 통해 의료소비자에 의한 무면허 의료행위 감시를 강화한다는 것 등이다.
한편, 구미 선진국은 정규교육 과정으로 준의사(準醫師 또는 진료보조사)를 양성하여 의료 사각지대와 인력이 부족한 의료기관에서 활용 중이다. 이런 국가들은 국토가 넓거나, 해외진출 인력이 광범위하고, 수많은 전란을 치르면서 잉여의 의료보조인력이 과다하게 양성되는 등 독특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아시아 국가에서는 진료보조사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약사 보조인력 도입 현황
대부분의 약국은 보조인력을 활용 중인데, 이들 업무의 범위와 수준에 대한 실정법(약사법) 위반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그간 약사 보조인력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조제행위의 합법성 여부였다. 약국내 잠재적인 범법행위를 방지하고 약사직능의 발전을 지원하는 합리적 보조직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약사 보조인력(Pharmacy Technician, PT; 가칭 ’약무조무사’)제도 도입의 타당성을 연구하고,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며, 보조인력의 업무내역 및 활용방안을 약사법에 적시하여 국민보건 향상과 약업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연구들을 살펴보면, 2007년도 개국약사 284명을 대상으로 데일리팜 창간 8주년기념 여론조사에서 약국 보조인력 제도화 찬성 42%, 반대 42.2%였고, 2008년도 울산광역시 약사회원 152명 대상 연구에서 ‘지금은 시기상조이나 언젠가는 꼭 필요한 제도’란 응답이 55%, ‘전문카운터 등 무자격자 불법행위가 정당화될 위험으로 약사직능을 위축시킬 수 있어 반대’가 44%였다. 2009년 데일리팜이 주관한 조제보조원 찬반 인터넷 여론조사는 찬성 49%, 반대 51%였다.
같은 해 서울시약사회가 ‘약국환경개선 대회원 설문조사’로 ‘약국보조원’ 도입여부 응답자 2,055명 중 1,080명(52.6%)이 찬성~적극찬성 이었는데 이유는 ‘약국업무의 수월성 증가’, ‘약사의 전문성 확대’, ‘고객 편의제공의 적합성’ 순이었던 반면, 911명(44.3%)이 반대~적극반대였던 이유는 ‘전문 카운터(counter)의 양성화 우려’, ‘불법행위 조장 가능성’, ‘보조원들의 집단적 행동에 따른 노사갈등의 첨예화 가능성’ 순이었다.
2019년 대한약사회가 실시한 연구에는 전국 3,322명의 약사가 참여했는데, 약국종업원 제도화 필요성에 85.33%가 찬성한 반면, 조금~매우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약사는 5.08%에 불과하였다. 또한, 이를 국가에서 제도화하는 것에 매우찬성~조금찬성이 49.89%, 조금~매우반대가 25.36%, 중립적 입장은 24.76%였다. 제도도입의 시급성에 대해서 27.06%가 필요없다고 응답했고, 47.23%는 2년 이내로 빠를수록 유익하다는 응답이었다.
약사법 제2조 11항에, “조제란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일정한 분량으로 나눔으로써 약제를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했는데, 여기서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는 것은 한 가지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비록 다수의 의약품을 배합하는 행위가 아니하더라도 한 가지 의약품을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제”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약사들은 여전히 보조인력이 정제를 계수하는 행위는 불법일지라도, 시럽제를 따르거나 외용제를 담는 행위는 적절하다고 인식하며, 비록 똑같은 행위라 할지라도 현장을 단속하는 공무원이 파악, 인정하는 것에 따라서 위법성 여부가 차이 나는 불합리성이 있다. 그리고 약사들 조차도 조제용 자동포장기(ATC)를 작동시키는 단순행위는 보조인력 업무에 해당하지만 ATC에 의약품을 채우는 분포는 조제행위이며, 보조인력이 약사의 감독하에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범위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조제행위의 주체를 규정한 약사법 제23조 ‘의약품 조제’ 항은,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약국 보조인력에 의한 정제 계수나 액상제 소분도 조제행위 범주에 속하지만, 사법부 판례에 따르면, 약사의 지시에 따른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조제 보조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약사의 조제행위에 대한 2005년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은, “약사법 각 규정의 내용과 취지를 종합하면 어떤 행위가 약사법에 의해 규정된 조제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및 그것이 누구의 조제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함에 있어서 그 행위가 가지는 특성 중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는 육체적 작업으로서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특정인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의 종류와 투약량, 투약방법이 적절한지 여부, 의사의 처방이 의약품의 배합금기에 위반되는지 여부, 대체조제가 가능한지 여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투약할 의약품의 종류와 용량, 용기 등을 판단하는 정신적 작업으로서 의사결정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며 약사의 지시, 감독하에 이루어진 기계적 조제보조행위는 무자격자의 조제행위가 아닌 약사의 조제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약사법 제21조에서는, ‘약국의 관리의무’에서 ‘약국을 관리하는 약사가 보건위생과 관련된 사고가 없도록 종업원을 철저히 감독할 것’을 명시함으로써 약사업무를 보조하는 종업원의 역할을 사실상 인정하나, 약국내 주된 업무인 의약품의 조제와 판매는 약사에게 한정된 업무이며 종업원에게 허용된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약사법 제44조에 약국개설자(근무약사 포함)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고 명시하여 약국에서 비약사의 판매행위에 대해 금지하지만, “약사가 고객상담을 실시하는 도중에 이루어진 무자격자에 의한 일반의약품 판매행위에 대해, 약사의 묵시적 또는 추정적 지시 아래 판매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약사가 의약품을 판매한 것이라고 법률상 평가함이 상당하고, 다만 약사가 보조원을 기계적, 육체적으로 이용하여 판매한 것에 불과하다.”고 법원은 판시하였다.
즉, 약사,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은 단순, 기계적 반복작업은 보조인력을 활용하고 전문가는 고유업무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 효율적이라는 데 공감한다. 보조자의 자격요건이나 업무범위에 대하여 의료법이나 변호사법처럼 구체적으로 규정된 경우는 물론이고, 약사법이 보조인력에 관하여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법원의 판결처럼 약사의 지휘, 감독하에 조제나 판매 중 단순작업을 보조원이 대신 수행한 경우에라도 약사의 행위라고 평가, 용인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가 약업현장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약사 보조인력의 적절한 명칭
약업계는 그동안 약국 보조인력에 대한 정식 명칭을 정한바 없다. 일반적으로 ‘약국보조인력’, ‘약국보조원’, ‘약국종업원’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동안 대한약사회에서 관례적 회무용어로 “약국보조원”을 사용하다가 2015년초 우수약무기준(GPP) 초안 발표 시 ‘약국종업원’으로 대체하였다. ‘종업원(從業員)’이란, 어떤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며, ‘직원(職員)’은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간호조무사(看護助務士’)란 법정(法定)자격을 가지고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와 진료업무를 보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간호조무사의 전 용어였던 간호보조원(看護補助員)에서 보조원이란, 거들어 주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향후 제도화를 정식으로 추진할 경우, 전문성과 자격이 주어지기 전에는 “약무조무원(藥務助務員, Pharmacy Assistant)’을, 자격제도의 도입 후에는 “약무조무사(藥務助務士, Pharmacy Technician)”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그림 1].
출처: https://www.thebalancecareers.com/pharmacist-job-description-salary-and-skills-2061814
약사 보조인력과 약업혁신을 위한 대응
이상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약사 보조인력에 대한 (1)명칭, 역할, 선발, 교육, 훈련, 자격에 대한 통일된 기준의 미비, (2)주요사안에 대한 구체적 진전없이 논의 과정의 장기간 중단, (3)실정법에 대한 위법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음에도 약사 사회의 대응이 부적절하고, 해결방안을 위한 의견이 통일되지 못한 채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었고, (4)일선 공무원, 약사, 보조인력이 사법부의 판례와 약사법의 해석에 차이를 보이며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5)타 보건의료계 보조인력에 대한 수용실태와 제도화 노력에 비해 약업계의의 노력과 성과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약사 보조인력의 제도화에 대한 논의는 연구와 실증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시의적절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이후에는 미국,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일본 등의 약사 조무인력 제도의 배경과 도입과정, 양성교육 및 자격제도와 등록절차, 법적지위와 허용된 업무범위, 인력수급 및 급여수준 실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약업의 혁신방안을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