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중 아리아 "내가 땅 속에 묻힐때"에 사용된 오스티나토의 예.
여기 떠오르는 질문 하나. 짧은 악구가 전곡에 걸쳐 반복되면 듣는 입장에서 식상해지진 않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저음부에 배치된 오스티나토의 경우, 그 위에 흐르는 주선율은 대부분 다양하게 변주하는 캐릭터다 . 그 결과 오스티나토라는 견고한 틀과 상성부의 자유분방한 멜로디·리듬의 대조는 음악적 쾌감을 배가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파헬벨 카논의 경우 간결한 하모니가 강조된 오스티나토 위로 유영하는 리드미컬한 선율들은 다이나믹하고 생동감 넘친다. 이는 이 곡이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강조점에 따라 오스티나토는 여러 양상을 띈다. 라벨의 '볼레로'의 예를 들면 두 마디의 오스티나토가 작은 북에의해 169번 반복된다. 이 곡은 고집스러운 '리듬'이 강조된 경우로써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선율과 궤를 함께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구조다. 곡이 전개될 수록 작은 북은 그저 반주리듬이 아니라 리듬 그 자체로 오스티나토의 화려한 끝판왕을 보여준다.
반면 선율적 요소가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작곡가 헨리 퍼셀의 비극적 아리아 '내가 땅속에 눕힐 때'는 바소 오스티나토의 정수를 보여준다. 드물게 5마디로 이루어져있으며 슬픔을 상징하는 하행 반음계의 오스티나토가 노래하듯 되풀이된다. 이는 서서히 절절한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오스티나토만큼 공백기 없이 사랑을 받아온 작곡기법도 드물다. 게다가 장르도 초월했다. 변형을 통한 반복중심의 미니멀 음악은 오스티나토가 기본 뼈대다. 재즈의 패턴화된 리프(riff)도 마찬가지고 팝에서는 댄스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덧붙여 언어와 달리 음악은 반복으로 퇴색하지 않는다는 속성은 시사점이있다. '음악은 무엇인가'의 저자 주커칸들 교수는 "시 혹은 시각예술은 반복할수록 식상해지지만 음악은 반복의 기반위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항상 참신하다"고 말한다.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말하면 어색하다. 하지만 노래의 후렴은 아무리 반복해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음악에서의 반복은 자연스럽고 도리어 점진적으로 심도를 더한다.
오스티나토라는 반복의 콘셉트는 중세시대 성악곡이나 Yeah!라는 현대의 팝송이나 변함없다. 작곡가 쇤베르크는 말했다. "음악은 반복해야지만 명료해진다"고. 이 글을 쓰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생모토가 생각났다. '오스티나토 리고레 (Ostinato rigore)'. '끈질기게 엄격하라'라는 뜻으로 끈기를 강조한 말이며 뼈때리는 말이다. 이는 다빈치의 위대한 업적 뿐아니라 음악에서도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에 등장하는 아리아 '내가 땅속에 눕힐 때(When I am laid in earth)', 그리고 어셔의 Yeah! 두 곡을 추천한다. 이 아리아는 고즈넉한 바소 오스티나토로 시작한다. 가장 슬픈 '비가'로 알려져있을만큼 자결하기 직전 연인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데 꺼져가는듯 하행하는 오스티나토가 비탄한 분위기를 십분 살려낸다. 어셔가 2004년에 발표한 Yeah!는 빌보드 차트 1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곡이다. 이 곡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강력한 비트가 다름 아닌 오스티나토다. 노래보다도 오스티나토가 더 각인될 만큼 그 효과는 강력하다.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