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하늘타리는 남부 따뜻한 지방의 산기슭과 들에 분포하고 특히 제주도와 다도해 여러 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덩굴성 여러해살이식물로서 박과에 속한다. 덩굴손이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면서 줄기가 10미터 정도로 자라고 마디마다 손바닥만큼이나 큰 잎이 어긋난다. 단풍잎처럼 5~7갈래로 갈라지고 표면에는 털이 있고 뿌리는 고구마처럼 생긴 커다란 덩이뿌리이다.
하늘타리는 암수딴그루 식물이어서 수꽃과 암꽃이 따로따로 피고 꽃의 생김새도 다른 꽃에 비해서 매우 특이하다. 꽃은 7~8월 한여름 잎겨드랑이에서 자란 기다란 꽃자루 끝에 흰 꽃이 한 송이씩 핀다. 암꽃의 꽃자루는 3센티미터 정도이고 수꽃의 꽃자루는 15센티미터 정도로 길다.
박꽃처럼 해가 떨어진 저녁 무렵에 피는데 꽃받침과 꽃잎은 각각 5갈래로 갈라지고 갈라진 꽃잎은 다시 실처럼 잘게 갈라진다. 꽃 모습은 마치 산발한 할머니 머리를 연상시킨다. 밤에는 실 모양의 꽃잎들이 쭉쭉 뻗어있지만, 아침에 동이 틀 무렵부터는 곱슬머리 모양으로 오므라든다.
흰 꽃은 밤나방과 같은 야행성 곤충의 눈에는 잘 띄어서 꽃가루받이에 중요하다. 암꽃에는 암술이 1개이고 암술머리가 3개로 갈라지고 화분이 없는 헛수술이 있으며 수꽃에는 암술은 없고 3개의 수술만이 있다. 노랑하늘타리도 있다.
꽃이 지면서 주먹만 한 크기의 타원형 푸른 열매가 열리는데 가을에 오렌지색으로 익는다. 이 열매 속에는 다갈색의 많은 씨가 들어있다. 근래에는 이농한 농촌의 빈 집터가 많아지면서 번식력이 왕성한 하늘타리가 무성하게 자라 집을 뒤덮고 있고 가을철에는 넝쿨 줄기에 황금빛으로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의 농촌풍경을 연출한다.
하늘타리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덩굴줄기가 하늘을 향해 다른 물체를 타고 올라간다고 해서 하늘타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하늘타리 속명 트리코산테스(trichosanthes)는 그리스어로 ‘머리카락’이란 뜻의 “트릭스(trix)“와 ‘꽃’이란 뜻의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다. 따라서 ‘머리카락 같은 꽃’이라는 뜻이므로 꽃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하늘타리 열매를 방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데 하얀 머리를 풀어헤친 듯한 꽃을 피우는 하늘타리를 진짜 귀신마저 무서워할 정도인 모양이다.
하늘타리는 버릴 것이 없는 매우 유용한 자원 식물로서 새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에서는 녹말을 만들어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하늘타리 열매를 괄루(括樓), 덩이뿌리를 괄루근(括樓根), 가루로 만든 것을 천화분(天花粉), 씨를 괄루인(括樓仁)이라 하여 모두 약제로 사용한다. 씨는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하며 천식에도 사용한다. 뿌리는 열을 내리고 갈증을 없애고 종기에 사용한다.
뿌리의 성분으로 트리코산틴(trichosanthin), 쿠크르비타신(cucurbitacin), 트리코잔(trichosan)이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뿌리에 함유된 트리코산틴(trichosanthin)은 234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당단백질로서 비교적 강한 항암 활성이 동물실험에서 밝혀져 종양 발생을 지연시키거나 세포독성이 입증된 바 있다.
특히 유방암과 폐암에 대한 항암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트리코잔(trichosan)은 혈당 강하작용성분으로 밝혀졌으며 동물실험에서도 입증되었다. 중국에서는 한때 괄루근이 피임약으로 고려된 바 있는데 항암 성분인 트리코산틴(trichosanthin)이 배란된 난자나 여포의 퇴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임신 3개월에서 6개월 때 96%의 임신중절 효과가 입증되었다. 따라서 괄루근의 알코올 추출물은 유산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임신 중에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