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미국과는 많이 다른 우리나라 대학병원 수련의 교육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20>
신재규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8-10-17 15:56

1. 사라진 인턴

어머니 병실에서 내가 잠을 자던 간이침대에는 장갑이며 피묻은 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어머니는 복수천자 시술 (paracentesis)을 시작할 때처럼 왼쪽으로 모로 누워 계셨다어머니 배에 복수를 빼기 위한 관이 보였지만 연결된 용기에는 1/3정도만 찬 것으로 보아 복수가 별로 나온 것 같지 않았다간호사에게 물어 보니 인턴은 다른 병실로 복수천자하러 갔다고 한다.

좀 기다리니 인턴이 헐레벌떡 돌아왔다아마 간호사가 연락했나 보다.  2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3월부터 인턴생활을 시작했으니 병원경력은 고작 5개월에 불과했다. 물어보니 선배의사가 휴가를 가서 자기 혼자 입원환자들의 복수천자 시술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잘 수련받은 인턴은 복수천자와 같이 간단한 시술을 대부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인턴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좀 어려운 사례 (case)를 만나면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당황하기 쉽다그래서,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 (프리셉터 – preceptor - 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필요할 때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인턴은 수련의의 신분이기 때문에 프리셉터는 인턴이 수행한 시술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 주어야 한다그래서,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인턴에게 간단한 시술을 혼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라도,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가 와서 보고 확인한 다음 인턴이 작성한 환자 차트에 같이 사인해야 한다 (attending attestation; 아래 설명을 참조).  이는 수련의가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환자를 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프리셉터의 확인이 빠진 수련의의 의무기록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위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작성되었던 의무기록의 일부다이 기록들은 수련의 신분인 레지던트가 작성한 것이다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그 환자가 입원했을 때 지정의가 되는 동시에 그 입원환자를 돌보는 레지던트를 지도, 감독하는 프리셉터가 된다그래서, 어머니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어머니에 대한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였을 것이다하지만, 이 레지던트들이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어머니 담당 교수가 이들의 기록을 확인해 주는 항목 (attending attestation이라고 부른다)이 빠져 있다.  Attending attestation은 수련의들이 작성한 기록이 정확한지 확인해 주고 이들의 환자 평가와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동의한다는 프리셉터의 기록과 서명을 담는다레지던트는 수련의 신분이기 때문에 환자 치료의 최종 책임을 맡은 전문의의 기록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따라서, 레지던트가 작성했는데 attending attestation이 빠진 의무기록은 마치 상사의 사인이 빠진, 말단 사원이 작성한 효력없는 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교육적으로도 의무기록 작성은 의사 수련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왜냐하면, 의무기록은 다른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레지던트를 지도하는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으면 누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물론, attending attestation이 없다고 해서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무기록의 질로 보아 수련의의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프리셉터의 교육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 같다.  

3. 투명인간의 역할을 하던 외래의 레지던트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에 완화치료를 받으러 네 번 방문했었다그때마다 진료실에는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완화치료 담당 교수와 함께 앉아 있었다간호사 등 다른 직역이 사진과 이름이 코팅된 명찰을 매달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 서울삼성병원에서는 의사가 금색의 명찰을 가슴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사만 다른 형태의 명찰을 달고 다니는 것은 의사가 일종의 특권직역임을 은연중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원이 환자치료를 위해 여러 직역들의 협력을 도모한다면 이는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의사를 레지던트라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진료여건상 한 진료실에 두 명의 전문의를 둔다는 것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머니가 3주에 걸쳐 네 번 담당 교수를 만나는 동안 이 레지던트는 투명인간 역할을 하고 있었다우리에게 질문을 한 적도 없고 담당 교수와 치료방법에 대해 서로 상의하지도 않았다단 하나 하는 일이 있었다면 우리와 담당 교수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으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이로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외래에서 레지던트 수련과정 중 하나가 아마도 바쁜 프리셉터를 대신해서 의무기록을 작성해 주는 것 같다.

이는 내가 경험한 미국 대학병원의 레지던트의 외래 수련과정과 크게 차이가 난다과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레지던트가 먼저 환자를 진료실에서 단독으로 보면서 문진, 촉진 등을 한다이때 전문의인 프리셉터는 대부분 다른 방 (attending room)에 있다다음, 레지던트는 환자를 진료실에 남겨 두고 attending room으로 가서 프리셉터에게 문진, 촉진 결과와 함께 자신이 생각한 진단과 치료계획을 말한다 (이를 환자 발표 – patient presentation – 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셉터는 수련의와 함께 진단과 치료계획을 토의하여 결정한 뒤 수련의와 함께 진료실에 있는 환자에게 가서 이을 설명해 주고 환자의 질문에 답한다환자가 떠난 후 수련의는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프리셉터는 여기에 attending attestation을 남긴다나도 클리닉에서 수련인을 지도할 때 이 모델을 이용한다그리고, 이 모델에서는 진료실 수만 충분하다면 전문의 한 명이 레지던트 2-3명을 한꺼번에 지도, 감독할 수 있다

과실습 첫 주에는 레지던트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가 처음부터 환자를 보고 레지던트는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옆에서 관찰하기도 한다그런데, 이때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사람은 전문의이지 레지던트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보았고, 레지던트는 단지 이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과실습 3주차에서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는 경우는 (레지던트가 잘 못하지 않는 이상) 드물다레지던트는 수련을 마친 다음에 독립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수련시키기 위해서 전문의의 지도, 감독하에 레지던트는 환자를 직접 혼자 볼 수 있어야 한다그런데, 삼성서울병원의 가정의학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대 응급실에서도 전문의와 함께 수련의가 앉아 있었지만 환자 보호자로서 내가 보기에 두드러진 수련의의 역할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를 호명하는 일이었다왜냐하면, 진료실 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처럼 투명인간으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아무리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더라도 교육을 위해서 프리셉터가 진단과 치료 계획에 대해 레지던트와 토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전문의와의 토의를 통해 레지던트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나 몰랐던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토의과정을 통해 수련의가 이를 제기할 수도 있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4. 병실에 들어와 보지 않는 병동의 레지던트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주치의는 레지던트였다그런데, 이 레지던트는 행방이 묘연했다 -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왜냐하면, 난 어머니가 56일동안 입원하시는 동안 매일 병원에 있었고 3일밤을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이 레지던트가 어머니 병실에 들어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입원 당일 환자 병력, 약력을 꼬치꼬치 물어 보며 나를 인터뷰했던 사람은 이 레지던트가 아닌 간호사였다간호사는 간호평가와 계획 (nursing assessment and plan), 의사는 간호계획과는 촛점이 다른 H & P (history & physical examination)이라는 입원의무기록을 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난 주치의 타이틀을 가진 레지던트가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이후 어머니가 물을 드실 때마다 토하신다고 해도, 통증이 좀 심해진 것 같다고 해도, 복수가 차서 불편해 하신다고 해도 이 레지던트는 들어와 본 적이 없다병동에 있으면서도 환자를 보지 않는 레지던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난 굉장히 궁금했다.

병동 중앙에 간호사들이 모여 앉아 있고 컴퓨터가 여러 대 비치되어 있는 곳을 영어로는 nursing station이라 부른다 (한글로는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몰라서 영어를 쓴다).  어머니 병실을 나서면 바로 nursing station이 있었는데 그 레지던트는 컴퓨터 앞에 항상 앉아 있었다그럼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난 이 레지던트가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아마도 이 레지던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검사 오더하고 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이 레지던트는 혼자 20여명의 환자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의 검사를 오더하고, 약을 처방하고, 검사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보아야 한다왜냐하면,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검사결과가 임상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 구토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 검사는 단지 환자 정보의 일부분이지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대신하지 못한다그래서, 미국 병동의 수련의는 적어도 하루 한 번, 매일 attending과 회진하기 전에 병실에 들어가 문진 (이를 history라고 부른다), 촉진, 청진 (이를 통틀어physical examination이라고 부른다) 등을 하고 이 결과를 다른 검사 결과와 함께 회진 중에 동료 수련의와 프리셉터에게 발표한다.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시리즈의 다른 블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의료진 운영은 환자를 외래에서 보아왔던 지정의 중심이다, 병동을 담당하는 레지던트는 각각의 병동 환자들이 외래에서 보아왔던 전문의 (=지정의)들의 지도 감독을 받는다이 제도는 병동의 환자 치료에 대한 결정이 지정의의 외래 진료 스케줄에 의존하는 비효율적인 단점외에도 레지던트 교육에도 긍정적이지 않은 면이 많다일단 외래 진료 스케줄이 다른 여러 명의 전문의들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레지던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미국 대학병원의 여러 과에서는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을 레지던트 교육에 사용한다예를 들어, 우리학교 병원의 경우, 오후 1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심순환기 내과 전문의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심순환기 병동을 실습하고 있는 레지던트들에게 강의를 한다. 레지던트들이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이유는 attending이 입원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오전에 병동회진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처럼 많은 수의 환자를 맡아야 하는데다 스케줄이 제각각인 여러 명의 프리셉터가 있는 경우 레지던트를 위해 교육시간을 따로 떼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 수련의 여러 명과 프리셉터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체제에서는 프리셉터가 입원환자들을 맡는 기간동안에는 외래 환자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입원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레지던트 교육에 신경을 쓸 수 있다하지만,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프리셉터로부터 양질의 교육을 기대하기 힘들다.      

5. 휴일에는 보이지 않은 프리셉터

주말을 삼성서울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난 어머니를 담당한 레지던트를 nursing station에서 볼 수 있었다하지만,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인 담당 교수는 병동을 찾지 않았다간호사도 이를 당연히 여기는지 교수님이 월요일에 회진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우리나라와 미국은 병원 상황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병동을 들르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프리셉터는 수련의 자신이 미래에 환자를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돌보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역할 모델 - role model - 이라고 부른다).  주말에 병동에 나오지 않는 프리셉터를 보면서 수련의는 무엇을 배울까?

외래와 병동에서 만난 수련의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방법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점을 좀 해소할 수 있었다환자들과의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한 것은 수련기간 중 병동 실습에서 환자에게 문진하는 일이 드물고, 외래 실습에서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았다.  ,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는 문진과 촉진/청진 등은 소홀히 하고 검사에만 의존해서 진단과 치료를 하려는 경향도 이러한 수련과정에서 생긴 것처럼 보였다, 대학 교수급 전문의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이 미국 의과대학생보다 떨어지는 것도 수련과정에서 프리셉터의 지도 감독이 부족했던 데에 기인한 것 같았다그리고, 무엇보다 일과 교육이 서로 균형잡힌 체계적인 수련과정이 아닌, 일의 수행에 집중된 수련과정으로 보였다이런 수련과정에서는 문헌을 읽고, 자신이 수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성찰 (reflection)하고, 프리셉터의 조언 (feedback)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수련과정 때문에 전문의가 처방을 했건 수련의가 처방을 했건 문제가 없었던 약처방을 발견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신재규교수 ▲ 신재규교수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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