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5가지 부탁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3-08-14 10:25

퇴임을 앞두니 종종 “약대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약대 내에 몇 가지 드라이 랩(dry lab)을 설치해 주기를 부탁 드린다. 드라이 랩이란 약사법, 약학교육학, 약물경제학, 약학사나 윤리약학처럼 실험을 하지 않고 연구하는 전공을 일컫는 조어(造語)이다. 이에 반해 약물학, 약제학, 유기제약처럼 실험을 해야 하는 기존의 전공을 웻 랩(wet lab)이라고 부른다. 세포(cell)에 비유하자면 웻 랩들은 핵(nucleus)에 해당하는, 약학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핵심전공들이다. 그러나 세포는 핵만 가지고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일견 핵보다는 덜 중요해 보이는 세포질이나 세포막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세포의 요소들이다. 드라이 랩도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약학의 한 요소인 것이다. 약사의 직능은 법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예컨대 ‘조제는 아무나 할 수 있다’로 그 법이 바뀐다면, 약학에서 핵심전공(웻랩)을 열심히 공부하는 의미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약사법을 전공하는 교수가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약학교육학이나 약물경제학 등을 전공하는 교수도 시간이 흐를수록 절실히 필요해 지고 있다. 이제까지는 핵심전공 교수를 확보하기에도 TO가 빠듯했기 때문에 드라이 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은 천연물과학 연구소와 합병을 하면서 교수 수가 45명으로 늘었다. 드디어 몇 개의 드라이 랩을 설치할만한 여유가 생긴 것이다. 조만간 각 약대에 다양한 드라이 랩이 설치되는 꿈을 꾸어 본다.

다음으로는 6년제를 일본처럼 4+2년제로 바꾸는 노력을 해 주기 바란다. 사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4+2년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약학사(藥學士)는 4년, 약사(팜디)는 6년 교육하는 제도로, 실질적으로는 4년제와 6년제를 병행 운영하는 제도이다. 4+2년제를 당장 도입하기 어렵다면, 정진호 서울약대 전 학장의 의견처럼 최소한 약사면허 시험을 2단계로 나누는 것도 합리적일 것이다. 1단계에서는 과거 4년제 하에서의 약사국시처럼 합격자에게 약학사 학위를 주고 졸업을 시킨다. 그리고 이들 중 약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추가로 2년간 임상약학을 공부시킨 후 시험 합격자에게 면허를 주자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약대 교수를 뽑을 때 기존 교수와 전공이 다른 사람을 뽑았으면 한다. 지금 학문은 나날이 진화 분화하여 유전자치료제학, 세포치료제학, 생물약학, 의공학약학 등 과거에는 들어 보지도 못한 학문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를 외면하고 과거의 학문 분류에 집착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약학은 옛날 학문들의 박물관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새 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새로운 전공들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네 번째로는 ‘맞춤약학(individualized pharmacy)’을 임상약학 교육의 최종 목표로 삼기를 제안한다. 미국에서 매년 입원 환자 중 10만 명이 의약품의 부작용 (ADR)으로 사망한다. 이는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 차이(대사효소, 막수송체 및 수용체 면에서)를 고려하지 않는 기존의 약물요법의 필연적인 결론이다. 따라서 ADR은 머지않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擡頭) 될 것이다. 해결책은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약물요법, 즉 ‘맞춤약학’뿐이다. 이 시대적 요구에 선도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머지 않아 약사 직능의 심각한 도태가 우려된다.  

끝으로 생물의약품학(biologics) 교육을 강화해 주기 바란다. 21세기가 되어서도 백신, 유전자 치료제, 세포치료제 같은 생물의약품의 출현은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빠르지 않다. 이는 이들에 대한 ‘물질’로서의 이해가 부족한 과학 수준 때문이다. 약은 구체적으로는 결국 물질이다. 따라서 약학에서는 생물의약품에 대해 ‘물질’로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증할 수 있는 규격을 설정하는 연구와 교육에 치중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실질적으로 ‘생물의약품 시대’를 여는 공로가 약학에게 주어질 것이다. 약학만만세!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