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ptococcus (연쇄상구균)에 의한 인후염을 미국에서는 'Strep-throat' 이라 불린다. 약국안에 있는 미니클리닉에서는 Strep-kit를 이용하여 환자의 감염여부를 진단하는데 이 진단은 미니클리닉의 여러가지 진단 중에 가장 중요하고 빈번한 진단이다.
미니클리닉에서 나온 미스 트레보가 아들 맥스가 Strep에 걸렸다고 나에게 처방전을 보여주는데 Nurse Practitioner인 나탈리는 맥스에게 페니실린을 처방했고, 하루에 두 번 250mg을 열흘간 투여하는 용량이었다. 뒤이어 치과에 다녀온 미스터 와이즈만도 처방전을 내미는데 그 역시 페니실린 처방전이었다. 500mg씩 하루에 3 번, 7일간 복용하는 처방이었다.
약국 처음 시작할 때 페니실린은 '추억의 올드 약' 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현장에서 많은 처방전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Strep-throat' 에는 예외없이 페니실린이 처방되고, 치과에서는 페니실린이 반합성 페니실린Amoxicillin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오는 처방이다. 매우 오래된 약이고 잘 알려진 Penicillin shock이란 부작용도 있고, 최신의 반합성약들도 많아서 Prescriber들이 꺼릴만도한데 현장에선 아직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경험상 크게 문제가 없는데 소비자입장에서 굳이 비싼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페니실린은 영국의 플레밍박사가 1928년에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페니실린 발견 이 후 이어진 놀라운 여러가지 항생제 개발과 또 그로 인한 질병 퇴치등의 역사를 볼 때 페니실린의 발견은 뉴톤의 만유인력 발견,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등과 버금가는 역사상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 해 9월 28일에 Dr. Fleming은 실험실 테이블위에 실수로 열려 있던 Petri dish에 푸른 곰팡이가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Petri dish에서 자라고 있던 Staphylococcus (포도상구균)이 곰팡이가 떨어진 자리옆에는 자라지 않는 'Halo'가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이 후 이 푸른 곰팡이의 항생효과 발견은 여러 학자들의 도움으로 산업용 생산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페니실린은 2차대전 중에 대활약을 하게 된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처음 투입된 페니실린은 총상을 입은 연합군병사들의 세균감염에 의한 사망을 막아줌으로써 연합국의 2 차대전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페니실린은 이 외에도 그 전까지 치료하지 못했던 많은 전염성 질병들, 임질이나 매독등의 성병치료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였다.
페니실린의 발견처럼 우연한 일들이 위대한 발견의 어머니로 가는 경우가 역사에는 종종 있다.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칸딘스키는 어느날 외출에서 아뜰리에로 돌아와 보니 너무나도 훌륭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그림은 자신의 그림이었고 다만 거꾸로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칸딘스키는 여기서 일정한 선입관을 배제하면 전혀 다른 '느낌' 이 온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위 추상화의 길로 나서게 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톤이나 목욕탕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도 같은 경우이다.
디트로이트 한 병원에 어느날 한 여자 환자가 호흡곤란과 발진등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그녀는 Penicillin shock였다. 그녀는 페니실린을 복용중인 남자 친구와 사랑을 나눈 후 이런 증상을 보였다는데 정액을 통해 배출된 미량의 페니실린이 그녀에게 Anaphylaxis를 일으킨 것이라 한다. 다행히 이 환자의 증상은 곧 회복돠었고 남자 친구는 이 후 콘돔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페니실린의 부작용은 적은 양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약국에서도 페니실린 전용 Tray, Spatula를 두어 특별히 조심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선 페스트가 창궐하여 그 때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인 1 억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 헤르만 헷세의 '지와 사랑'에서 주인공 골드문트는 이렇게 뇌까린다. " 어디간들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지 저승사자한테 붙잡혀 들판에서 썩어갈 운명에 놓여 있다. 그 다음에는 우리들 뼈다귀를 가지고 두더쥐들이 골패를 놀거다..." 페니실린의 위대한 발견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후 이어진 찬란한 항생제의 개발이 없었다면 골드문트가 뇌까린 것이 지금 현재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페니실린이 기적의 약이라 불렸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