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천연에서 발견된 리드(lead) 화합물을 개량한 약, 아스피린 - 아스피린 (아세틸살리실산)은 버드나무에서 발견된 진통 성분인 살리신을 개량하여 살리실산을 합성하고, 이를 다시 개량함으로써 탄생한 약이다. 약의 개발은 이처럼 최초로 발견된 활성물질(리드 화합물)을 화학적으로 수식(修飾)하여 보다 약효가 강하고 부작용이 적은 형태로 최적화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 최적화 과정에는 시행착오의 반복이 불가피 하다. 아스피린보다 소염, 진통작용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은 이부푸로펜, 인도메타신, 디클로페낙 등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
(사례 2) ‘골라 잡기’로 발견한 물질을 개량한 약, 딜티아젬 - 1960년대부터 약을 발견하는 수법으로 랜덤 스크리닝(random screening)법이 각광을 받았다. 일본의 다나베(田辺) 제약도 전에 항우울제로 개발하려고 합성해 놓았던 1, 5-벤조치아제핀 유도체들이 혹시 다른 생물활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스크리닝 해 보았다. 그 결과 1,5-벤조치아제핀의 3위치에 산소관능기(-OCOCH3)가 도입된 유도체에 강력한 관(冠) 혈관 확장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 계열의 유도체들을 더 많이 합성한 다음, 그 중에서 약효가 좋고 독성이 적으며 소화관에서 흡수가 잘 되는 물질을 하나 선택하여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한 것이 딜티아젬(diltiazem)이다.
(사례 3) 약물설계를 통해 합성된 항히스타민제, 시메티딘 - 1930년대 말에 메피라민과 디펜히드라민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항히스타민제임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기와 염증은 억제하지만, 위산 분비는 억제하지 못하는 모순된 작용을 나타내었다. 이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체에는 알레르기와 염증에 관여하는 수용체(H1수용체)와 위산분비에 관여하는 수용체(非 H1수용체)가 따로 있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비 H1수용체(히스타민H2수용체라고도 부름)에 결합하는 물질을 찾아내면,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1964년부터 제임즈 브락크 박사(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SK&F사(현 Glaxo SmithKline)의 연구진이 과감히 이 가설에 도전하였다. 그들은 히스타민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화합물들을 설계, 합성해서 이들 중에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 있나 조사하였다. 비록 초보적이긴 하지만 히스타민과 비H1수용체의 작용 메커니즘을 고려하여 약의 화학구조를 설계하였다는 점에서 역사 상 최초의 ‘약물 설계drug design’라 할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그들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약인 브리마미드(brimamide)를 발견하였다. 이 약을 동물에 투여해 보았더니 실제로 히스타민과 비 H1수용체 간의 결합을 방해하여 위산 분비를 억제하였다. 일단 성공이었다. 그러나 브리마미드는 경구로 투여하면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흡수가 잘 되고 부작용이 적게끔 화학 구조를 개량하였다. 그 결과 얻은 약이 위궤양 치료제로 유명한 시메티딘(cimetidine)이다. 위궤양은 그 때까지는 오랫동안 입원해서 치료하거나 때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병이었지만, 시메티딘이 개발된 후로는 입원하거나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가벼운(?) 병이 되었다. 할렐루야!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그 가운데에서 지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행착오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과 미래의 신약개발에 있어서도 귀중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