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약달라고 떼쓰는 불쌍한 애론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기자 webmaster@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1-08-27 10:59

애론이라는 청년이 어제 약, 제넥스 (Xanax: Alprazolam)을 가져갔는데 오늘 또 왔다. 

신경안정제, 정확히 얘기하면 항불안약 (Antianxiety drug)이다. 약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단다. 어제 돈 없다고 세 알만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 와서 나머지를 가져간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돈도 없는데 정신도 산만한 환자. 약도 잃어버리고, 무조건 와서 떼쓴다. 

하루치만 달라고. 하지만 파일에 안타깝게도 리필이 없다. 이 약은 향정신성약물이므로 의사 처방 없이 약을 절대로 미리 줄 수 없다. 불쌍하다고 줬다간 면허증 반납해야한다. 그 전에 이 약과 관련된 사건도 있어서 절대로 안 된다고 버티는데 정말 땡강이다. 맛이 많이 간 환자다. 아직 23 살밖에 안 된 젊은인데 참 안 됐다. 

의사에게 전화를 하니 벌써 퇴근한 후. 응답기에 메시지는 남겨놓았지만 오늘 안에 응답이 오진 않을 것 같다. 어제, 같은 의사한테 처방전을 전화로 받으면서 의사가 절대로 리필이 없다고 했는데 오늘 잃어버렸다고 떼쓰며 오다니. 이 말 저 말 횡설수설하는데 지금 약 기운이 떨어져 막 걱정 (anxiety)이 밀려온다(?) 한다. 약을 잃어버렸다는 게 거짓말 같기도 하고. 집에 가서 잘 찾아보라하니 이번엔 친구가 훔쳐 갔단다. 

그럼 친구에게 가서 달라고 해보라 하니 플로리다로 가버렸단다. 어쨌든 계속 떼쓰다가 가버렸다. 환자는 환잔데 정말 못 말리는 환자다. 프로필을 보니 다른 의사가 다른 처방을 준 적이 있어 그 분에게 전화를 넣어 보았다. 

하지만 그 의사 왈, 자기가 처방을 한 약이 아니므로 리필을 줄 수 없다 한다. 당연하다. 한참 후에 메시지를 받은 처방의사가 고맙게도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의 대답은 “노”였다. 환자를 못 믿겠단다. 의사를 설득해 보았는데 의사도 완강하다. 잠시 후에 간 줄 알았던 이 친구 다시 왔다. 

의사가 처방을 거절했다 하니 또 횡설수설한다. 그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자니 다시 한 알만 달라고 조른다. 말투도 이상하고 목소리도 작고. 정말 한참 맛이 간 친구다. 어쩌나 불쌍해도 나로선 별 수가 없다. 

의사도 거부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렇게 중요한 약을 왜 잃어 버렸냐고 했더니 다시 친구가 훔쳐갔단다. 참, 별종일세. 그 전에 메릴랜드 주 약사회에서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내용을 보니 당신이 조제한 약에 대해 환자가 고발을 해 왔단다. 무슨 고발? 심장이 다 떨렸다. 

뭐가 잘못 되었기에 고발까지. 알고 봤더니 환자가 제넥스 8알 처방을 받았는데 6알밖에 못 받았단다. 그 땐 내가 내 약국이 아니라 다른 약국에 가서 하루만 일할 때였는데 그래서 사고(?)가 터졌다.

 그 환자 왈 다음날 약국에 가서 부족한 2알을 더 달라 했더니 다른 약사가 못 준다고 해서 고발한 거란다. 그 때 바로 나한테 왔으면 그냥 sorry하고 두 알을 더 주었을 텐데. 다음날엔 다른 약사가 자기가 조제한 게 아니니 향정신성 약물을 그냥 줄 수는 없었을 게다. 그래서 어처구니  없이 고발을 당했다.                                                                                                              

약국 본부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주어서 별탈은 없었지만 식은땀은 좀 흘렸다. 사실 다른 약을 줬다거나 용량이 틀렸다거나 하는 환자의 건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갯수의 문제니까 별 일없이 그냥 넘어 간 것 같다. 이런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약인데 계속 달라고 떼를 쓰니 저 인간 나를 진짜 시골의 동네 약장수로 아나보다. 왔다 갔다 도합 3시간 이상 저렇게 서서 떼를 부린다. 하다 못해 다시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의사가 받아 하루치만 주자 했더니 의사도 매우 완강하다. 하루치도 안 되겠단다. 하여간 환잔데 의사도 너무 하는 듯하다. 파일을 보니 당뇨병에 간질도 있는 듯한데… 결국 경찰을 부른다고 하니 도망가 버리긴 했지만 많이 찜찜하다. 약이 없다는 게 거짓말일지는 몰라도 환자에게 약을 못 준 게 약사로서 찜찜하고, 또 이 인간이 언제 돌변해 총 들고 다시 나타날까봐 뒤통수가 근지럽고 쭈빗 소름도 돋는다. 어쨌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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