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답사 上
잊혀져가는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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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09-20 20:00
▲ 부산대 약대 약학부 성윤경
5박 6일의 긴 여정이 6월28일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백두산천지를 보러간다는 마음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산하게 준비를 하였다.

우리 일행은 동래에서 모여서 인천까지 단체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약 6시간 소요된 그 길에 모두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출국시간보다 꽤 이르게 도착하여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사진도 몇 장 찍으면서 긴장을 좀 풀었다.

드디어 승선을 하고 우리 19명은 매트리스만 깔려있고 전혀 구획도 없는 널찍한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엔 17시간 가량 배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을 몰랐던 터라 그저 즐겁기만 했다. 교수님과 다같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각자 놀기도 하고 그러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9일 중국시간으로 오전 7시 가량에 단동 항구에 도착했지만 중국 입국 관리원들이 9시부터 근무를 하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하선을 하였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이 아주 많았다. 좌측의 사진은 하선 직전에 찍은 것이다. 중국어를 못 알아들어서 관리원들이 가끔씩 소리치며 말할 때면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항구 대기실에서 앞으로의 우리 일정을 책임질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지금은 중국으로 나와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는 이 분은 학생을 가이드해 보긴 처음이라며 우리를 아주 반겨주셨다.

이분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 중국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과 차들이 아주 자유로이 중앙선을 넘어 다닌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나 도로를 걸어 다니는 소들 모두 달리는 차를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로 양옆으로는 옥수수 밭이 아주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길을 지나서 우리가 간 곳은 압록강이다.

그 곳에는 103개의 섬이 있는데 100개는 북한이 관리하고 3개는 중국이 관리하고 있다. 강에는 유람선이 다니고 주변에 수영을 하는 중국인도 여럿이 있었다. 그리고 '중조친선의 교'라고 하는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가 있었다.

철교가 이어진 것이 이 친선의 교이고 나머지 하나는 반 이상이 유실된 상태였다. 6·25때 폭격을 맞아서 끊어진 것을 중국이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압록강변을 바라보면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통화시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는 옥수수 밭이 넓게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었고 군데군데 들른 화장실도 모두 특색이 있었다. 중국 시골집은 거의 붉은색이었다.

벽돌도 붉은 것을 쓰고 지붕도 모두 붉은 기와를 썼다. 집밖에는 富와 福이라는 글씨를 하나씩 써서 붙여 두었다. 중국 사람들은 음력 1월1일에 이러한 글씨를 크게 써서 붙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고구려 첫 수도 오녀산성(홍본성) 길목


환인으로 가는 길목에 '오녀산성'을 지나가게 되었다. 고구려의 첫 수도인 홀본성(오녀산성)의 일부가 지금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사람들이 축적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라 한다. 오녀산성은 직접 올라가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서 우리는 지나는 길에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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