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후 치열한 처방경쟁과 입지다툼, 불황에 허덕이는 약국경영으로 인해 단결된 약사사회의 모습이 간절한 요즘, 30년간 이어온 전통으로 회원들을 하나로 끌어모으는 약사회가 있다.
서울 성북구약사회(회장 조찬휘)는 지난 30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산신제(山神祭)'를 개최하고 있다. 약사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고 특히 대입시험이 다가온 수험생들의 성공을 함께 기원하는 뜻깊은 행사다. 이 행사가 무려 30년을 거쳐오며 회원들의 단결과 화합을 도모하는 한편 약사회 발전의 기반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젊은 회원들에게는 약사회의 역사를 바로 알고 회원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성북구약의 젊은 임원인 단온화 여약사부회장은 30년을 맞은 산신제를 다녀온 후 그 남다른 감회를 짧은 글에 담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성북구약사회는 상당히 다채롭고 흥미로운 곳이다.
물론 40년 동안 이어져 온 약사회의 전통과 서울시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대단한 곳이지만 무엇보다 30년간 이어져 온 등반대회와 산신제가 나에겐 제일 경이로운 행사다.
약사가족의 행복과 안녕 기원
성북구약사회의 산신제는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는 한편 현대사회에 걸맞는 진지한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물론 절차와 제물차리기는 어느정도 간소화되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년 추수가 지나고 한해동안 북한산자락에서 우리 성북약사회가 아무탈 없이 보내고 회원들의 안녕과 건강을 축복드리고 특히 고3을 둔 수험생의 약사님댁의 기원을 드리기 위함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 산신제는 수학능력시험 꼭 1주일 전 토요일로 정한다.
그리고 이 날 약사회의 자문위원, 지도위원, 회장단 및 임원님들은 성북에 살고있는 모든 약사가족들의 행운과 건강을 지켜달라 산신령님께 빌고 또 비는 것이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화기애애한 행사
산신제를 앞두면 사무국장을 비롯한 약사회 직원들은 바쁘다. 장장 며칠동안을 분주하게 보낸다.
분주한 준비에 이어 당일 아침에도 점검하고 또 점검해서 낮 시간때쯤 모두들 정릉 청수정 입구에 삼삼오오 모두 모인다.
알록달록 등산복차림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복돋으며 산 중턱 쯤 자리잡아 짐을 내린다. 이제부터가 문제이다. 연배 있으신 분의 지시에 따라 상을 펴고 음식을 놓는다. 처음 경험하시는 임원진들은 어르신들의 지시에 따라 연실 왔다 갔다 하면서 열심히 제단(祭壇)을 채운다. 제사의 절차와 순서 그리고 그 예(禮)를 익히는 것이다. 우리 성북구 산신제 전통을 이어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정성으로 제사를 준비한다.
준비가 다 되면 제(祭)를 시작하고 회장님은 축문(祝文)을 읽고 드디어 우리 약사회의 발전과 평온을 기도하고 수험생을 둔 약사님네는 그저 바라는 대학에 '척' 붙게 해달라고 재배을 드린다.
처음 이 행사를 진행할때는 요즘 세상에 무속신앙을 믿고 따르는 선배님들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해가 지날 수록 그 신성함과 의미있고 보람찬 이 행사는 우리 성북구만의 특별한 풍습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돼지머리와 나의 수난
그런데 이 행사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이제부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간이 나는 괴롭다.
다들 제사를 끝내고 앉으면 국장이랑 여약사님들은 과일 깎고 음식과 술을 나눠서 주는데 어김없이 “돼지머리의 수난”이 시작된다.
옆에 흰봉투를 많이 물고 있던 돼지 머리가 이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국장이 약하디 약한 과일칼로 도마에다 썰고 나더러 나눠 드리고 먹으란다. 지금도 그 시간이 너무 괴롭다. 어떤 분은 어디선가에서 박국장에게 “나는 혀줘” 하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단다. 반토막이 된 돼지머리를 바라보며 한구석에 박혀 밥도 못 먹었다. 싫었다. 이런날은 누군가 꼭 양주를 스폰서 하신다고 챙겨오신다. 산속의 한기(寒氣)는 독주(毒酒)를 풀어야 된다나? 그래서 한 잔씩 쫙 돌리며 이런저런 얘기하다 해지기전 정리해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올라 올때보다 훨씬 가벼워진 짐꾸러기들이 산 정상에 두고 온 아쉬움만큼의 무게만큼 줄어들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발그레해진 사람들의 얼굴은 울굿불굿 물든 단풍과 어울려져 깊은 가을 노을을 맞이하듯 아름답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우리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보여 주는 듯 정겹다.
해마다 그냥 가볍게 산행이다 생각하고 다녀오기도 하지만 이 행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어오고 유지 되는 것은 물론 나에게도 가장 의미로워 지는 것은 바로 성북약사회의 모든 위원들을 사람하는 선배님들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