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이 음악사를 통틀어 관현악의 금자탑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독보적인 예술적 성과라는 사실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터, 9개의 교향곡 모두 각각 다른 예술적 개성과 영감을 담아낸 자타공인 불후의 명곡. 하지만 1~9번 중에 8번은 유독 인기 없는 교향곡으로 통한다. 5번 교향곡과 더불어 가장 자주 연주되는 7번과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교향곡 9번 <합창>사이에 낀 8번의 태생적 한계일까? 1814년 빈 초연 당시 베토벤 7번과 함께 연주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연 당시 대성공을 거두었던 7번 교향곡과 비교 대상이 되었고 당시의 빈의 음악신문(Allgemeine musikalische Zeitung)은 "청중으로부터 그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라고 전했다. 혹자는 이 작품에 대해 진지성이 결여된, 베토벤스럽지 못한 교향곡이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베토벤 본인의 평가는 어땠을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그의 제자 체르니가 베토벤에게 8번 교향곡이 7번보다 인기가 없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베토벤의 대답은 이랬다. "7번보다 8번이 훨씬 낫기 때문이지." 현재까지도 아홉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손이 안 가는 교향곡으로 통하는 교향곡 8번. 하지만 이 작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8번이 베토벤의 '위대함'을 대변하기에 역부족으로 비취지는 이유는 교향곡의 스케일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26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교향곡은 아홉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짧으며 2관 편성으로 사이즈도 작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7번이 작곡가 리스트로부터 '리듬의 신격화'라는 평을 들을만큼 리듬의 극치감을 맛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이 작품은 기쁨의 정서를 담고 있는 친밀감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베토벤은 8번을 '작은 F major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다른 교향곡에 비해 유니크하다. 작품이 쓰여진 1812년은 청력 상실이 상당히 진행되어 효과도 신통치 않은 트럼펫 모양의 보청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절망감과 씨름하며 곡을 써 내려간 시기였다. 하지만 의외로 베토벤 특유의 고뇌의 흔적이나 인간승리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베토벤은 현실을 초월한 내면의 유쾌한 세상을 꺼내 보이며 ''서프라이즈!''를 외치는 듯 하다. 아무리 심오한 철학적 해석을 더한다고 해도 이 작품의 악상은 늘 밝고 즐겁다. 1812년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그의 절친이었던 베티나 브렌타노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음악은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불을 붙여야 한다"라는 내용과 궤를 함께 하듯 느린 서주 없이 쾌조의 불꽃을 쏘아 올리며 달리는 빠른 3/4박자의 1악장은 하이든 풍의 유쾌함과 활기찬 음악어법이 돋보인다. 익살과 유머를 살린 2악장, 민속적인 렌들러풍의 3악장에서 느껴지는 정겨운 정취 그리고 마지막 4악장은 스케르초 풍의 악상과 예측불가한 전조진행으로 고전파의 전통양식을 패러디한다.
이 교향곡 속에는 보통 자리잡고 있어야 할 '느린 악장'이 존재하지 않는데 2악장은 '알레그레토'템포로 제법 빠르며 작정하고 익살스러운 음악어법을 구사한다. 느린 2악장이 자아내는 선 굵은 감정선보다는 좀처럼 보기 힘든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악장이다. 고전미에 위트 있는 반기를 내비친 듯한 제스처랄까. 8번은 클래식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는 3악장 트리오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비할 데 없는 아이디어"라고 극찬했으며 차이콥스키는 4악장을 베토벤 음악 중에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았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었던 위대한 극작가 버나드 쇼도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8번 교향곡에 대해 "모든 점에 있어서 교향곡 7번보다 8번이 낫다"라고 평한 바 있다.
베토벤은 유일하게 이 작품을 그 누구에게도 헌정하지 않았다. 자신만을 위한 '소박한' 교향곡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