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청교방 거리는 기녀들의 집단 거주지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주 고객이지만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이 큰 손님들이다. 중국을 오가는 조선의 사신단 에는 역관(통역)이 반드시 동행하였다. 그들이 사신무역의 주역이다.
조선에선 인삼과 종이 등이 주력상품이고 중국에 가선 비단·도자기·서책 등을 들여왔다. 그들은 떼돈으로 소위 대박을 쳤다. 청교방 거리에선 그들이 들어오는 날엔 밤낮없이 노랫가락이 거리를 메우고 기녀들의 분향이 진동하였다. 흡사 잔치 날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선역관들이 몰리는 기녀가 생겼다. 기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은 중국여자라는 것이다. 조선의 역관들이 중국에 갔을 때 조국의 체면을 생각하여 차마 청루를 찾을 수 없었으나 국내에 와서는 마음 놓고 중국 기녀 집으로 몰렸던 것이다. 조선기생이야 한양에 가도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서다.
중국 기녀란 옥빈(妓名화화華花)이다. 그녀는 화려한 꽃이란 기명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자동선이 고고한 인품과 높은 학문의 식견으로 사대부들은 물론 중국의 한림학사 장녕까지 휘어잡은 조선기녀 세계가 어떠한가 직접 체험을 위함이다.
장녕의 마뜩찮은 태도 때문이다. 입만 열면 자동선의 얘기다. 동정호 악앙루의 기습 옥빈의 장녕 성폭행으로 그들은 결국 부부가 되었다. 장녕에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복덩이다. 옥빈의 밤마다 달콤한 육탄공세에도 장녕의 자동선에 대한 집념은 꺾일 기세가 아니다.
옥빈은 자동선의 잠자리 대리여인에 불과하였다. 노모와 두 자매를 정성껏 보살펴도 장녕의 사랑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은 조선기녀 자동선에 가 있고 꺼풀인 육체만 옥빈의 옆을 서성거리고 있다. 자존심이 강한 옥빈은 그런 것이 마음을 병들게 하였다. 노모와 두 자매의 사랑보다 옥빈에겐 장녕의 뜨거운 사랑이 절실하다. 그러나 장녕의 사랑은 옥빈에게로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부생활은 일년 만에 끝이 났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구도 아쉬움이나 미련이 있어 하는 표정이 아니다. 오가다 첫눈에 반해 사랑을 나누다 헤어져 기던 길을 다시 가는 남자와 여자 표정이다. 오히려 홀가분해 하는 눈치다.
그동안은 잘못 끼워진 단추로 인해 어색했던 옷을 바로 잡지 못했던 것을 바로 잡아 입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가람에 꽃은 지려하는데 / 만나는 날은 아직 아득하구나 / 한마음 맺지 못한 사람이라 / 공연히 풀로 동심(同心)을 지으려하네’ 설도(薛濤:768~831)의 《춘망사》(春望詞)를 남기고 옥빈은 바람처럼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점심때가 돼도 안보이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옥빈은 보이지 않았다. 서재엔 엊저녁에 읽던 책이 그대로 펼쳐진 채다. 장녕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찬장엔 숟가락 한 쌍이 가지런히 깨끗이 씻긴 채다. 장녕은 처음으로 저녁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홀아비 삼년동안에도 해보지 않던 밥 짓기다.
그런데 해가지고 어둠이 깔려도 옥빈이 나타나지 않자 어젯밤 방사할 때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전례 없이 격렬한 교접이었다. 장녕이 두어 번 절정을 느끼는 사이에 옥빈은 전례 없이 온몸을 불사르듯이 “사랑해요!”를 헛소리처럼 외쳐댔던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극적으로 이뤄졌다 극적으로 끝이 났다. 옥빈이 조선의 개성 청교방 거리로 숨어들어서다. 여자의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장녕을 성폭행으로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으나 그 남자는 끝까지 옥빈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잠자리는 하되 사랑하지는 않았다. 옥빈이 교접을 보채면 마지못해 귀찮은 표정으로 응수 해 주었던 것이다.
옥빈은 손님을 선택하여 맞았다. 중국 손님들은 받지 않고 조선의 남자들만 받았다. 조선의 사내들도 골라골라서 맞았다. 옥빈은 낮엔 조선여자로 행세하고 밤엔 철저한 중국여자로 변신하여 조선의 사대부들을 녹였다. 그녀와 한 번 잠자리를 한 사내는 비몽사몽 상태로 사흘이 멀다 하고 옥빈을 찾았다.
옥빈을 찾는 사내들이 줄을 서서 자기 날짜를 학수고대하였다. 입소문은 개성을 넘어 한양에까지 화화바람이 거세다. 사내들은 화화바람을 황하(黃河)바람이라 불렀다. 조선 사대부들이 화화라 부르면 옥빈을 지칭하는 것으로 청교방 거리에선 알아들었다. 화화가 소속되어 있는 청루 월궁(月宮)은 일 년 열두 달 인산인해다.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사대부들이 들끓어 주변 술집도 덩달아 성업을 즐겼다.
화화의 상술은 뛰어났다. 봄엔 초선, 여름엔 양귀비, 가을엔 서시, 겨울엔 왕소군이 되어 조선 사대부들을 품었다. 중국의 사대 미인들을 말로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으니 사내들은 화화의 변신에 황홀경에 취하여 즐길 뿐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기막힌 보너스(景品)가 붙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다 와서 즐기고 간 고객엔 고객이 제일 좋은 날을 선택하면 하루 밤을 화대(花代)없이 여자노릇을 해주는 기발한 경품이다.
하지만 2~3년이 되어도 경품을 즐긴 사내는 없다. 일 년에 화화와 뜨거운 살을 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네 번을 잤다 해도 계절마다 한 번씩 자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워서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어라’ 황진이 《소세양을 보내며》를 붉은 비단에 날아갈 듯한 필체로 새겨 탁자위에 놓여졌다.
화화가 누구를 대상으로 시에 정한(情恨)을 드러냈다. 장녕일 수도 있고 조선 사대부 중 사랑하고 싶은 사내가 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표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화화는 겉으론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나 외롭고 고독한 여자다.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 여자가 되어 장녕을 휘어잡은 조선 여자의 기술을 익히려다 지레 지쳐가고 있어서다. 중국여자가 조선여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