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자동선(紫洞仙) <제2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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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8-10-17 15:43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장녕은 눈을 떴다. 상쾌한 기분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거침없이 자동선을 끌어안고 욕심을 채운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어른거린다. 하도 힘을 넣어 욕심을 채워 아직도 아랫도리가 얼얼하고 화끈화끈하기까지 하다. 그때였다. 자동선이 머리 맡에 앉아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며 술국을 권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 예쁘다. 방금 선계(仙界)에서 내려온 선녀 모습이다. 장녕은 청순한 자동선을 보자 문득 전설의 서왕모(西王母)를 떠올렸다. 지금 장녕은 자동선의 수청을 받은 줄 알고 있다.

싱글벙글 만족한 표정이다. “이 술국으로 속을 풀어야 하옵니다. 이 술국은 북어와 콩나물을 넣고 대인군자를 위해 소저가 직접 끓인 것이옵니다. 어젯밤에 과로하셨습니다. 폭음에 방사까지 즐기셨으니 소저 걱정이옵니다.” “그러하느냐? 너는 방사기술도 으뜸이더라... 소녀경(素女經)을 읽었느냐?” “대인어른께선 별것을 다 물으시네요. 소전 부끄럽사옵니다.“ 자동선은 정말 어젯밤에 수청을 들은 듯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자동선의 수줍은 표정을 본 장녕은 어젯밤의 뜨겁고 행복했던 방사를 떠올렸다. 기쁨과 환희의 웃음이 나오고 또 아랫도리가 꿈틀댔다. “자동선아! 내가 듣기로는 대동강 뱃놀이가 기가 막히게 좋다는데 나와 함께 할 수 있겠느냐? 오늘 저녁에 국경을 넘어야 함으로 오전밖에 시간이 없느니라...” 진지한 말투다. “예 대인군자께서 부탁을 하시는데 소저 어찌마다 할 수 있겠사옵니까?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아니다.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내가 개성 유수한테 준비를 시키고 너는 나와 동행만 해주면 되느니라!” “그렇게 해주시면 더욱 좋사옵니다. 그런데 소저와 동행할 한사람이 있사옵니다.” “그게 누구냐?” “예 대동강 수양버들 뱃놀이에 술이 없어서 되겠는지요? 소저의 어머니를 동행하여 주안상을 준비하겠사옵니다...” 장녕과 자동선은 개성 유수가 준비한 백마를 타고 퇴기 제일청은 나귀에 주안상을 싣고 따랐다.

대동강 뱃놀이는 유명하다. 강 양쪽으로 수양버들이 바람이 불면 마치 선녀들이 춤을 추는 듯하여 신선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벌써 먼저 온 뱃놀이 배들에서 풍악이 울려 퍼지고 기녀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운 듯 대동강 뱃놀이는 봄·여름·가을까지 밤낮이 없다.

배는 타는 신분에 따라 배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울긋불긋 비단으로 치장한 것은 사대부들의 것이고 보통 옷감으로 햇빛을 가린 것은 돈을 번 중인(中人)들의 배다. 조선은 엄격한 계급사회다. 뱃놀이에서도 신분이 분명히 갈리었다. 계집의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자동선은 중국의 사신을 따라 왔으므로 울긋불긋 호화선의 주인공이 되었다.

거문고 가야금 소리에 기생들의 노래 소리가 바람에 춤추는 수양버들과 어울려 이승이 아닌 선경인 듯하다. 장녕 표정이 굳어졌다. 적이 놀라는 표정이다.

문득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조국 중국의 동정호를 떠올리는 듯하였다. “대인어른 어떠세요? 대동강 뱃놀이 재미를 누구한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대장부라면 한번쯤은 보고 즐길만해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분 냄새의 얼굴을 장녕에게 바짝 다가대며 자동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몸까지 바짝 붙여 장녕의 아랫도리에 닿았다. 자동선의 신비롭고 자극적인 체취에 장녕의 물건이 고개를 들어 음부에 닿는 것을 여자는 느꼈다. ‘옅은 안개 짙은 구름 한낮은 수심으로 길기만 하고 / 금수 향로 서뇌향은 타오른다. / 좋은 시절 또 중양절이라 / 옥 베개 비단주렴엔 / 초저녁 스산함이 스며드누나. / 동쪽 울타리에서 황혼이 지도록 술 마시니 / 국화의 그윽한 향기 소매에 가득 하구나. / 임 생각 타는 심정 잊혀진다 말하시오. / 주렴을 거두노니 가을바람 부는데 / 사람 꼴 국화보다 말랐구나./ 이청조의 《취화음》(醉花陰)이다.

자동선이 거문고 음률에 시를 낭송해도 장녕의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대인군자께선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자동선이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다시 말을 붙였다. 그때서야 장녕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벌려 자동선을 뜨겁게 품었다.

그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까지 아침이슬처럼 보였다. “내 너를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고 그리워지느니라. 내 조선에 눌러 살수도 없고 내일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질지 걱정이 태산 같구나!” 장녕의 손은 어느새 속곳을 비집고 들어가 자동선의 그곳을 더듬고 있었다. “이곳에선 아니 되옵니다. 참으셨다 저녁에 정성껏 모시겠사오니 이곳에선 대인군자답게 점잖게 뱃놀이를 즐기시길 바라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억센 장녕의 뜨거운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당나라 만당(晩唐)시인 이상은(李商隱·813~858)의 시 《무제》(無題)를 낭송하였다. ‘만남이 어렵 듯 헤어짐도 어려워라 / 봄바람이 무력하니 꽃들도 시드네. / 누에는 죽어야 실이 다하고 / 초는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네. / 새벽 단장에 머릿결 변해 수심일고 / 밤중에 읊다보면 달빛만 싸늘하겠지 / 봉래산 가는 길이 예서 멀지 않으니 / 파랑새야 몰래 임을 찾아 주려무나...’ 자동선이 시낭송을 끝내자 장녕의 표정이 조용해졌다.

너무 놀라는 표정이다. 사내 품에서 아양을 부려 화대나 푸짐하게 받아내는 기녀로 봤던 눈치다. 중국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조선의 기생쯤 생각했다. 마음을 싹 바꾼 표정이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내 너를 한낱 기생으로 봤음을 사과하느니라! 중국에 가면 너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느니라...” 말을 마친 장녕은 술잔을 연이어 비웠다. “아니옵니다. 태상주는 독주라 그렇게 빨리 드시면 몸이 상하시옵니다.!” 자동선이 장녕의 술잔을 빼앗아 자신이 마신다.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동선이 있어 행복한 사내들이로다. 내 귀국길을 하루 연장하고 내일 대동강 뱃놀이를 한 번 더 즐기고 가리라...” “그렇게 하시면 소저도 더없는 영광이 되겠사옵니다...” 대동강 바람은 늦봄이지만 해가 떨어지면 싸늘하다. 장녕은 내일 대동강 뱃놀이를 약속하고 개성 유수 객사로 총총히 말고삐를 돌렸다. 자동선의 체취가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되돌아올 듯 돌아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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