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비행기 테러 사건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상도 바뀌어야만 했다. 그는 곧바로 테러범에 대한 보복에 착수했다. 알 카에다가 주요 타깃이었다. 알 카에다의 본거지 아프가니스탄도 중점 공략대상이었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최우선 제거대상이 되었다.
미국이 작정하고 공격하는 데 버텨낼 나라가 몇이나 될까. 직전까지 핵 협상에 집중하며 미국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던 북한마저도 자중하던 상황이다. 미국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공습 체제를 완비하고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승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전쟁은 그랬다. 하지만 전쟁이 이겼다고 해서 전략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이 직접 이역만리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할 수는 없다. 미국에 우호적인 자국 정치인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정도가 최선일텐데 아프가니스탄 국민도 알 건 다 안다. 결국 장기간에 걸친 저항에 직면하는데 이러면 미국이 이길 수가 없다. 단기간의 전면전이야 미국이 가장 잘 하는 전쟁이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전쟁은 완전히 다르다. 이미 베트남에서 한 번 패배한 경험도 있다. 장기화된 이 전쟁을 빠르게 종식시키는 방법은? 전쟁의 명분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빈 라덴을 체포해야 한다.
그런데 빈 라덴의 행방이 묘연했다. 전쟁 초반부터 근거지를 옮겨 다니며 미군의 움직임을 피해 다니던 빈 라덴이다. 특히 그가 활동하던 지역은 정서적으로 미국에 반발하는 지역들이었다. 가령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 등은 반미정서가 심해 미국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극히 어려운 곳들이다. 이런 지역에서 민심을 얻은 빈 라덴을 체포하기는 극도로 어려웠다. 그렇게 빈 라덴은 10년 가까이 도망쳐 다녔다.
그러던 2011년 봄 미국 정보부는 빈 라덴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장소는 아보타바드(Abbottabad)라는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 속 작은 마을. 나름 부유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빈 라덴도 있을 법 했다. 그래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빠른 시간 안에 체포하기 위해서인데, 그러지 못할 경우는 거점을 옮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전쟁도 그만큼 더 길어진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의 정확한 근거지를 파악하는 데 미국 정보부가 사용한 전략이 백신이다. 빈 라덴은 아이가 많았고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으므로 적절한 때에 백신 접종을 받아야 했다. 특히 소아마비나 B형 간염 백신은 그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접종하던 백신이었다. 따라서 백신을 접종하는 아이의 정보를 통해서 거주지를 확인하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도 있다.
백신을 접종하면 은신처가 나올까? 백신을 접종해도 누구의 아이인지 알기는 어렵다. 그래도 유전정보는 얻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빈 라덴 여동생의 유전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접종받은 사람이 빈 라덴의 혈족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어느 아이가 빈 라덴의 아이인지 알고 나면 나머지는 쉽다. 주소 정보는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불법이다. 유전정보를 미국에 제공해야 하고, 주소 정보를 열람해야 한다. 주소를 기입한 이유가 이런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유전정보는 더욱 더 귀한 정보다. 이 정보를 미국 당국에 흘린 사람은 파키스탄 현지 의사 샤킬 아프리디라는 사람이다. 아프리디가 어떤 이유로 이 정보를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보타바드 내에서도 빌랄 타운이란 부촌으로 근거지를 좁힌 미군은 추가적인 확인 작업을 마치고 근거지를 특정하였다. 이후 미군 특수부대의 움직임은 거칠 것이 없었다. 같은 해 5월 2일 빈 라덴의 은신처로 침입해 들어갔고 곧바로 빈 라덴을 사살하였다. 이 상황은 부대원들의 헬멧에 부착한 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백악관으로 생중계되었다.
다만 백신 접종을 활용했다는 <가디언>지의 폭로가 이어지자 미국 당국은 이를 즉각 반박하였다. 원래 세상 일은 양쪽 다 들어봐야 아는 법이고, 양쪽 말이 다르면 쉽사리 결론내릴 수 없다. 딱 거기까지다. 그래도 파키스탄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미국이 얄팍한 수를 써서 빈 라덴을 잡았다고 생각하며 소아마비 등의 백신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소아마비가 창궐하는 전 세계 3개국 중의 하나다. 이 말썽 많은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7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이 뼈 빠지게 일했는데 그 마지막에 와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니 좀 힘이 빠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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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