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그들 –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을 해 보자:
전국의 소방서에서 수련받던 인턴들이 소방관의 수를 크게 늘린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했다. 갑자기 근무지를 떠나 버려서 대부분은 업무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또, 일부는 불을 끄다가 말고 화재현장을 떠나 버리기도 했으며, 다른 이들은 불을 끄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소방 매뉴얼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남아서 수련을 받던 소수의 동료들을 집단으로 따돌림시키고 괴롭혔다.
만약 이들이 다시 소방관이 되고자 근무지로 다시 돌아와 수련을 받고 싶다고 한다면 이들을 받아주어야 할까?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때 대답은 당연히 “받아 주어서는 안된다”일 것이다. 소방관은 화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들에게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도 소방서 자체에서 제일 먼저 반대할 것이다. 사실, 일반회사라도 이런 식으로 사직한 사람을 다시 뽑지 않는다. 아무리 공부를 잘했었다고 하더라도 직업정신, 책임감 등 업무수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가 부족하면 작은 업무라도 맡기기 힘들다. 특히,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직업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다시 받아 주는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작년에 정부의 의대정원 증가 결정에 반발해 환자들을 내팽개치고 집단으로 수련병원을 사직했던 전공의들이 근무병원에 복귀하는 것과 수업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이 복학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아무런 벌칙도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도 없이 말이다. 수련병원의 일부 대학 교수들은 수련인들을 직업인으로 기르고 또 선배로서 후배들을 따끔하게 질책해야 하건만 오히려 전공의들을 보호하려고 아예 집단적인 휴진까지 강행하기도 했으니 상식적인 결정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의대 전체 모집 정원의 60% 이상을 한꺼번에 갑자기 늘리는 것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미래의 환자에게 궁극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정책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업무 인수인계를 마련하지 않고 갑자기 근무지를 이탈하는 것은 당장 환자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 돌아보면,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전국에 비상이 걸렸을 때 이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근무지를 이탈했다. 그 당시에는 전체 모집 정원의 10% 정도만을 늘리려고 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의대교수들도 현재 의과대학이 가진 자원을 고려했을 때 10% 정도의 증원은 교육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는 정도라고 확인하였으니 이들의 일련의 행동들은 환자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을 보여 준다.
나는 학생 교육과 환자 케어를 위해 우리학교(UCSF)의 여러 의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수련의와 의대생들이 의대증원에 반대해서 파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부터 듣고 한결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이런 반응에 대해 미국은 의료수가가 높은 반면 한국은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켜야 할 기본적인 직업윤리는 수입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직업윤리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만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이 사태에 대해 듣고 이런 사람들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아마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들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런 집단에게 의료를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라도 제도적으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전공의의 파업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전문의 자격증 (board certification)을 따지 못한 의사들이 환자를 보게 되면 건강보험에서 지불해 주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전문의 자격증은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특정분야에서 어떤 의사가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동료 전문의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전문의 자격증은 전공의 과정을 모두 마쳐야 딸 자격을 갖는다. 전공의 과정을 중도에 그만 두면 전문의 자격증을 딸 수 없다.
한편, 의사 면허 자체는 의과대학만을 졸업하면 딸 수 있다. 하지만,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환자를 독립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의사면허를 땄다고 하더라도 전공의, 전임의 등 졸업후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졸업후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의과대학만 졸업한 의사는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현행 제도하에서는 졸업 후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의사로서 환자를 볼 수 있고, 건강보험이 이에 대해 지불해 준다. 전공의들이 수련과정 중에 사직서를 내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전문의 자격을 따지 않더라도 의사면허를 사용해서 환자를 보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전문의 자격증을 따 동료의사들로부터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인정받은 의사에게만 지불해 주어야 한다. 동료들조차 아직 인정하지 않은 의사에게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지불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의사면허만으로도 환자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분의 가족이 아플 때 의사면허만 딴 의사에게 치료를 맡길 수 있냐고 묻고 싶다. 지금처럼 건강보험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못한 의사에게 지불을 해 주는 것은 오랜동안 수련을 거쳐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의사들에게도 공정하지 않다.
이 사태는 의대생 선발, 수련, 면허관리 등 의료제도 뿐만 아니라 성적 위주의 교육 등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이 합쳐져 일어났기 때문에 하나의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보험의 지불 제한으로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한 의사들은 돈을 버는 것이 어려우면 전공의들이 지금처럼 수련과정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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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