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정말 와파린을 복용하고 계신가요?
신재규 교수의 'Feom SanFrancisco'
신재규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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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와파린을 복용하고 계신가요?

“잊은 적 없어요.”

AP가 단호하게 대답한다.  

“AP님, INR이 1.0으로 나오는 가장 흔한 경우는 와파린(warfarin)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정말 와파린을 다 복용하셨나요?”
“네, 다 복용했습니다.”

그는 최근 심방세동 (atrial fibrillation) 진단을 받은 환자다.  심장을 아래와 위로 나누었을 때 위쪽에 있는 방들을 심방, 아래에 있는 방들을 심실이라고 부른다.  심방세동은 심방에서 기원하는, 심장의 박동이 규칙적이지 않은 부정맥 (arrhythmia)의 일종이다.  심방세동이 진행되면 심방이 제대로 수축하지 않아 피가 심방에 고일 수 있기 때문에 심방에 혈전이 생기기 쉽다.  이 혈전이 심실로 내려가 동맥을 따라 뇌로 이동하여 뇌동맥을 막으면 뇌경색이 발생한다.  즉, 심방세동은 뇌경색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뇌경색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심방세동 환자들에게 혈전 형성을 막는 경구용 항응고제가 권장된다.

경구용 항응고제를 크게 나누어 보면 최근에 허가받은 약들과 오랫동안 써 왔던 와파린이 있다.  최근에 허가받은 약들인 아픽사반 (apixaban), 리바록사반 (rivaroxaban), 에독사반 (edoxaban), 다비가트란 (dabigatran) 등은 와파린과 비교했을 때 뇌경색의 위험을 비슷한 정도로 또는 더 많이 낮추어 준다.  또, 부작용인 출혈의 위험도 최근 나온 약들이 와파린보다 더 낮거나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약들은 와파린과 달리 항응고효과를 모니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약물상호 작용의 위험도 낮다.  그래서 최근에 허가 받은 약들이 심방세동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권장된다.

AP의 일차의료제공자도 그에게 최근에 나온 약들을 처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지불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한 달에 100 달러 (우리돈으로 약13만원)가 넘었다.  그의 일차의료제공자가 나에게 와파린 처방과 용량 조절에 관한 협진을 의뢰하여 그를 두달 전 쯤 처음 만났었다.

와파린의 항응고효과는 INR (international normalized ratio의 약자)이라는 혈액검사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정상인, 즉 와파린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의 INR은 0.9~1.2사이이다.  와파린을 복용하면 INR 수치가 증가한다. 이때 INR 수치가 높다는 것은 혈액이 응고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혈액이 응고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면 출혈이 일어났을 때 제때에 멈추지 못해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혈액응고를 적당히 지연시키면서 출혈이 일어났을 때 비교적 늦지 않게 멈출 수 있는 수준으로 와파린의 효과를 유지시켜야 한다. 이러한 효과는 AP와 같은 심방세동 환자에서INR이 2.0에서 3.0 사이로 유지될 때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AP가 와파린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일주일 뒤에 측정한 INR은 1.6이었다.  그래서 나는 와파린 용량을 늘렸는데 2주 뒤에 측정한 INR은 1.2로 오히려 떨어져 있었다.  그는 INR을 떨어뜨릴 수 있는 새로운 약물의 복용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와파린 복용을 잊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와파린 용량을 좀 더 올려야 했다.

그런데 이후 측정한 INR은 1.0으로 더 낮아져 있었다.  내가 복용량을 더 늘려 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잊어버리고 그 전 용량으로 복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 번에 올린 용량을 다시 추천했다.  이로부터 2주가 지난 어제 측정한 그의 INR은 또 1.0이었다.

INR이 1.0으로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전문용어로 복약불순응 (medication nonadherence), 다시 말하면, 와파린을 하나도 복용하지 않는 것이다.  와파린 용량 조절은 전화로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의 편의를 위해 초진을 제외하고 그동안의 재진들은 모두 전화로 수행했었다.  하지만, 복약불순응을 확인하고 약을 제대로 복용하게 하려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어제 그에게 클리닉으로 오시라고 전화했었다.  오늘 클리닉에 와서는 단호하게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AP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가 가지고 온 와파린 약병이 눈에 띄였다. 나는 병을 열어 와파린 약의 갯수를 센 다음 와파린 병 라벨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AP님, 와파린 병 라벨을 보니 지난 5월9일에 약국에서 30알을 받으셨어요.  오늘이 6월 27일이니 5월9일부터 거의 50일이 지났습니다.  와파린을 시작하고 첫 일주일에는 하루 한 알을 복용하셨지요.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용량이 늘어 지금은 일주일에 3일은 하루 한 알반, 나머지 4일은 한 알씩 복용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와파린 병에 아직 12.5알이 남아 있습니다.  와파린이 모자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설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
“AP님, 첫 방문때도 말씀드렸지만 심방세동은 뇌경색의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로서는 이 약을 복용하는 것밖에 없어요.”
“제 부모님 모두 뇌경색을 앓으셨지요.”
“그러면 와파린을 복용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셨네요.  가족력으로 뇌경색이 있으면 뇌경색 위험이 더 커지니까요.”
“…”
“AP님, 약을 복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약을 복용하는 것하고 뇌경색 걸리는 것하고 어떤 것이 더 싫으신가요?”

침묵하던 AP가 멋적게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민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와파린을 매일 복용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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