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젬픽 (Ozempic)을 처방했을까?’
나는 내일 전화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환자 LH와의 통화를 준비하기 위해 그의 전자의무기록을 보고 있었다. LH는 40대 초반으로 약 3개월전 전이성 위암 진단을 받은 환자다. 안타깝게도 암 발견이 수술받기에는 너무 늦게 되어 LH는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암진단을 받을 때 2형 당뇨병도 함께 진단받았다. 그 후 LH의 일차의료제공자가 나에게 당뇨병 치료협진을 의뢰하여 LH의 당뇨병 조절을 도와주게 되었다.
당뇨병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집에서 측정한 혈당, 약 복용여부, 약의 용량, 식사량, 운동량 등 여러가지 사항을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전화를 이용해서 이러한 사항들을 환자로부터 효율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환자가 영어를 하지 못해 통역을 써야 하는 경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의 경우 클리닉으로 직접 방문하도록 요구한다. LH도 영어를 하지 못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면 많이 힘들기때문에 나는 이를 고려하여 그가 전화방문 (telephone visit)만 하도록 해주었다.
LH가 당뇨병을 진단받았을때 그의 당화혈색소 (hemoglobin) 수치는 7.2%였고 메트포민 (metformin) 최대 용량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났을때 LH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8.0%로 증가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일차의료제공자가 오젬픽 (Ozempic, 세마글루티드, semaglutide)을 새로 처방했던 것이다.
오젬픽은 우리몸의 위장관에서 분비되는 GLP-1(Glucagon-like peptide 1)이라는 호르몬과 유사한 방법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약이다. GLP-1호르몬은 크게 세가지 방법으로 혈당을 떨어뜨린다. 첫째, 췌장에 직접 작용하여 인슐린의 분비를 늘린다. 둘째, 뇌에 직접 작용하여 포만감을 빨리 느끼게 한다. 세째, 위장관을 더디게 움직이게 한다. 즉, 인슐린의 분비가 늘어나고 포만감과 더딘 위장관의 운동으로 음식을 적게 먹게 되니 혈당이 떨어지는 것이다.
오젬픽이 혈당을 떨어뜨리는 정도는 인슐린을 제외한 당뇨병 치료제들 중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최고용량에서 사용하였을 때 이 약은 당화혈색소 수치를 2% 정도 떨어뜨리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고 있는 자누비아 등의 DDP-4 억제제나 자디앙 등의 SGLT-2 억제제보다 2~4배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오젬픽 등 GLP-1 유사체는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보호효과가 입증되어 있고 신장보호 효과도 있어서 2023년부터 미국 당뇨병 협회는 당뇨병 환자 중 심순환기 질환이나 신장질환의 위험이 높은 환자들에게 메트포민 다음으로 GLP-1 유사체를 추천하고 있다.
오젬픽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 구토, 체중감소이다. 음식물이 소화, 흡수되려면 위, 소장, 대장을 차례로 지나가야 한다. 이처럼 음식물이 위장관 내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위장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오젬픽 등 GLP-1 유사체는 위장관이 더디게 움직이게 함으로써 음식물이 위장관내에 정체되게 만들어 메스꺼움과 구토를 일으킬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약들은 포만감이 빨리 들게 하여 음식 먹는 양을 줄인다. 그래서 오젬픽 등 GLP-1 유사체는 체중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체중감소의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LH는 7 kg정도로 심하게 체중이 감소된 원인을 찾다가 암진단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는 상태지만 좋은 식욕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언제 다시 악화될 지 모르는 전이성 암환자에게 구토, 체중감소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약을 쓰는 것이 안전한 방법일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LH의 당화혈색소 목표치이다. 모든 당뇨병 환자는 개인의 특징을 고려하여 당화혈색소 목표치가 정해진다. 즉, 환자의 기저질환, 저혈당 발생 여부, 기대수명 등을 고려하여 당화혈색소 목표치가 달라진다. 그 이유는 당화혈색소 목표치가 낮을수록 혈당이 낮게 유지되어 당뇨병 합병증의 위험은 줄지만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저혈당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기저질환이 없고 저혈당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젊은 환자들은 목표치를 6.5%보다 낮게 잡을 수 있는 반면 기대수명이 얼마 안 되지 않아 당뇨병의 합병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환자들은 목표치를 8%미만정도로 높게 잡는다.
LH의 의무기록에는 암이 간, 뼈 등으로 벌써 많이 전이된 상태여서 기대수명이 약 6개월 정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예후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의 수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이를 고려할 때 LH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8%미만 정도로 잡고, 새로운 약을 추가하는 대신 혈당을 올릴만한 음식물의 섭취를 좀 더 줄일 수 있도록 상담을 강화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치료방법인 것 같았다.
‘일차의료제공자님, LH의 당뇨병 협진건으로 연락드립니다. LH가 지난 주에 당화혈색소 수치가 8%로 증가하여 오젬픽을 처방받았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LH의 기대 수명이 얼마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LH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8%미만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젬픽은 체중감소, 구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록 LH가 지금 좋은 식욕을 유지하고 있지만 항암치료나 암의 진행으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8%보다 훨씬 낮게 잡고자 하신다면, 체중 증가도 유도할 수 있는 글리피지드 같은 약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나의 메세지에 대해 LH의 일차의료제공자가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통해 답장을 보내왔다.
‘약사님, 좋은 의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LH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8%미만으로 잡는 것에 동의합니다.’
내일 전화방문 때LH에게 오젬픽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