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기계적으로 일하는 어느 미국 약국
신재규 교수의 'Feom SanFrancisco'
신재규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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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으로 일하는 어느 미국 약국

 

약사님암로디핀 몇 mg을 복용해야 하는 거예요?”

 

BD가 클리닉에 오자마자 다짜고짜 묻는다.  55세인 BD는 약 2개월전부터 고혈압 치료를 위해 내 클리닉에 오고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BD는 일차의료제공자로부터 고혈압 치료제인 암로디핀 (amlodipine) 5 mg을 처방받아 하루 한 번 복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이 목표치인 130/80보다 좀 높았지만 나는 용량을 조절하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혈압을 매일 측정한 다음그 기록을 나나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날 때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왜냐하면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보다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즉 심근경색뇌졸중의 위험을 좀 더 잘 예측하기 때문이다. 

 

BD는 오늘 나를 만나기 3주전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났었다.  이 때, BD가 한 달간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목표치보다 높아서 일차의료제공자는 암로디핀을 최고 용량인 10 mg으로 올리고, BD의 약국에 그 새로운 처방 – 암로디핀 10  mg – 을 보냈다.   

 

차트를 보니 일차의료제공자께서 10 mg을 하루 한 번 드시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의사 선생님을 만난 다음에 바로 약국에서 10 mg을 타서 복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에 약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암로디핀 5 mg 리필 (refill)이 준비되었으니 가져가라고요.”

?  약국에 전화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겠네요.  그런데이번 주에는 암로디핀 몇 mg을 드시고 계셨어요?”

무슨 용량을 복용해야 할 지 몰라서 복용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이번 주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좀 높았군요.  약국에 전화하겠습니다.”

 

BD가 다니는 약국은 미국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큰 체인 약국이다. 

 

안녕하세요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가정의학과에서 BD님의 4월과 5월의 암로디핀 처방에 관한 교부 사항을 문의드리기 위해 전화드립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교부 이력을 알아보겠습니다.”

 

잠시 후 약국 테크니션이 약국 전산망의 기록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4 23일에 10 mg 90일치 받아가셨고, 5 7일에 5 mg 90일치 타 가셨습니다.”

저희 기록으로는 4 23일에 암로디핀을 5 mg에서 10 mg으로 올린 다음 다시 5 mg으로 변경하지 않은 것 같은데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마지막으로 받은 처방은 10 mg입니다.”

그러면 5 mg 5 7일에 교부하셨나요?”

그 처방이 살아있으니까요 (The prescription is active).”

?”

저희 약국 기록에는 그 처방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암로디핀은 하루 복용할 수 있는 최고 용량이 10 mg입니다.  그리고, 10 mg 2주전에 90일치나 환자가 받아갔으면 5 mg 처방이 따로 나오지 않는 이상 5 mg을 교부해서는 안 되잖아요.  환자가 혼동되서 약화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BD는 저희가 제공하는 자동 리필 (automatic refill)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고, 5 mg 처방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교부했을 뿐이예요.”

 

미국은 처방전 리필 제도라는 것이 있다.  고혈압 치료제 같이 장기간에 걸쳐 복용해야 하는 약을 받기 위해 환자가 매번 처방자를 방문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래서처방전 리필 제도는 안전성이 확보된 약을 처방자를 거치지 않고 약국에서 환자에게 일정기간마다 – 예를 들어 30– 교부할 수 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환자가 약을 리필하는 것을 잊어 버리면 약을 복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약국특히체인 약국들은 처방전 자동 리필 프로그램 (Automatic prescription refill program)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환자가 이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약국은 리필 날짜가 돌아온 약을 환자에게 자동으로 알리고 교부해 준다.

 

처방전 자동 리필 프로그램은 환자가 잊지 않고 제 때에 약을 타 가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BD의 사례에서 보듯이약국에서 처방전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약을 교부하여 약화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두 가지 다른 용량으로 동일성분의 약이 처방된 경우 (암로디핀 5 mg과 암로디핀 10 mg), 약사는 환자에게 교부하기 전에 처방자에게 문의를 하여 어떤 것을 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BD의 경우일차의료제공자가 암로디핀 10 mg 처방을 보낼 때 기존의 암로디핀 5 mg처방을 취소해 달라는 지시를 함께 넣었으면 문제의 소지가 사라졌을 것이다.  암로디핀 5 mg 처방의 취소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암로디핀 10 mg의 처방을 받았다면 약사는 약국에 등록되어 있는 환자의 기존 처방과 비교하여 같은 성분이 두 가지 다른 용량으로 처방된 것에 대해 처방자에게 문의를 해야 했다.  그런데이 과정이 생략된 상황에서 환자는 처방전 자동 리필 프로그램에 의해 암로디핀 5 mg 처방 리필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처방자로서 가끔 미국 약국들이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체인 약국들이 그렇다.  체인 약국들은 최소의 약사와 테크니션을 고용해서 최대한의 처방전을 처리할 수 있도록 운영된다.  그래서약국은 항상 바쁘고 약사가 처방전을 꼼꼼하게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처방자가 처방을 보낼 때 처방전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지도 모른다

 

그렇군요그러면약사님을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암로디핀 5 mg 처방을 취소하려고요.”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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