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편전쟁
에스토니아와 같은 유럽의 소국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비교적 약한 효과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대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마약은 각성제인 코카인이나 메스암페타민, 진정제인 헤로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마약은 이런 전통의 강자가 아니라 최근 들어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마약, 펜타닐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펜타닐 등의 합성마약으로 인한 사망자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백 명 정도다. 많은 사람이 날마다 죽지만, 같은 사유로 꾸준히 죽으니까 문제다. 가령 911사태로 사망한 사람은 2944명이다. 따라서 미국은 지금 매달 911급 사태를 겪고 있다. 심지어 하루 백 명이라는 숫자는 통계적인 평균치다. 최근에는 200명 가량으로 늘어나서 관계 당국을 더욱 고심하게 만들고 있다.
펜타닐은 1960년에 만들어진 약이다. 1991년에 혁신적인 패치제로 거듭나서 시장을 강타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2000년대 초반 풀렸던 처방 마약이 큰 역할을 했다.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처방하던 마약성 진통제를 어느덧 일반 환자들에게 처방하기 시작했고 이 사람들은 이후 마약 중독자가 되어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전까지 헤로인을 찾아 뒷골목을 전전하던 사람들도 병원에 찾아와 처방전을 요구하며 마약성 진통제를 받아가곤 했다.
이후 규제가 심해지며 이런 처방 마약을 받기 어려워지자 중독자들이 찾아낸 대안이 펜타닐이다. 그리고 펜타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마약상들이 펜타닐을 불법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존의 패치를 받고서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씹어먹거나 우러먹던 마약 중독자들이 예쁘게 생긴 펜타닐 알약을 먹고서 천천히 중독되어 갔다.
펜타닐로 인한 외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을 저격했다. 중국에서 펜타닐을 소량으로 보내면서 미국인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당시는 극미량의 펜타닐 가루를 우편시스템을 이용해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미국에 펜타닐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내에서 불법 펜타닐 생산 시설을 적발하고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던 시절이다. 마약이라면 청나라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중국도 지금 강력하게 단속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구멍은 있는 법이고 이 구멍을 통해 미국으로 흘러들어오는 펜타닐을 트럼프가 저격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에서 펜타닐이 퍼지게 된 계기는 미국 회사가 미국인에게 처방마약을 팔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 당국이 손을 놓았기 때문인데 왜 중국을 탓하냐는 말이었다. 중국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펜타닐로 인한 문제가 당시까지는 잠잠했던 것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렇게 외교적 분쟁이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 했다. 미중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상황이었고 펜타닐 말고도 중요한 현안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본다. 하지만 이 틈을 타고 펜타닐은 진화하고 있다. 소량으로 펜타닐을 보내던 마약제조업자들이 캐나다와 멕시코 등 미국의 접경 지역에 펜타닐 생산 시설을 마련해서 직접 생산한 후 마약 판매루트를 통해 펜타닐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백여 년 간 헤로인으로 재미를 봤던 마약업자들이 나름의 혁신을 통해 더욱 강력한 물질을 팔고 있다.
단속은 안 될까? 마약단속국에서 2022년 한 해 동안 압수한 불법 펜타닐이 대략 3억 7천만 정이다. 전 미국인이 한 번씩 복용해도 남을 양이 한 해에만 적발되었다. 적발되지 않은 양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양의 펜타닐이 퍼져 있을 것이다. 원래 강한 마약으로 가기는 쉬워도 다시 약한 마약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법이다. 미국의 마약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판단한다.
미국이 펜타닐 생산 시설을 적발하면서 파악한 사실이 있다. 펜타닐 생산을 위한 원료 물질이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 생산을 위한 원료 물질은 여러모로 규제가 많다. 이 위험한 물질의 수입 경로를 확인한 미국 마약단속국과 정부는 다시금 중국에 대한 압박을 걸고 있다. 19세기 아편전쟁의 복수를 왜 미국에게 하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기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21세기 아편전쟁으로 나아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