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펜타닐
아편전쟁 이후 아편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잘 알려진 역사다. 아편에서 모르핀이 분리되고 헤로인으로 변신해 많은 중독자들을 양산한 것은 이미 이 칼럼을 통해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헤로인으로 평생 만족할 것만 같던 마약 중독자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바로 펜타닐이다.
펜타닐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1960년 벨기에의 제약회사 얀센에서 개발한 이 마약성진통제는 그 근원을 메페리딘(페치딘)에 두고 있다. 메페리딘은 1930년대 독일에서 아편 공급이 끊기자 자체적으로 개발한 진통제다. 처음에는 복부 진통을 막기 위해 사용했는데 어느덧 모르핀을 아쉬운대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얀센에서 이 물질의 구조를 개선해 모르핀을 능가하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로 변신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덧 자연의 생산력을 따라가고 있었다.
처음 펜타닐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모르핀의 백배 가량 진통 효과를 보이므로 부작용도 그만큼 커질 것이고 따라서 중독성도 강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으로 물질을 바라본 사람은 미국의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였던 로버트 드립스. 당시 얀센을 이끌던 파울 얀센은 드립스와 면담을 하고 중재를 통해 불쾌감을 유발하는 물질을 펜타닐과 섞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렇게 펜타닐이 수술용 마취제로 세상에 나왔다.
이후 펜타닐을 견제하던 드립스가 사망하고 펜타닐에 대한 의료 현장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펜타닐은 자연스럽게 시장에 안착하였다. 혁신이 일어난 것은 1991년. 펜타닐이 경피흡수제로 개발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주사제로 사용하곤 했는데 피부에 붙여서 투과하는 제품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펜타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경피흡수제, 즉 패치제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피해자도 제법 나왔다. 일반적인 파스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접착면에 약효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파스는 붙이는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만 제형 특성상 접착 부위에만 약효를 보인다. 반면 패치는 어느 부위를 붙이든지 별 상관없이 피부를 통해 약효성분이 흡수되어 혈액을 순환한다. 피부를 통해 흡수되어 효과를 보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3시간. 이 둘을 헷갈리면 약화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펜타닐 패치를 붙였는데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한 장을 더 붙이는 식이다. 물론 펜타닐은 암이나 중증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이라서 쉽게 구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암환자가 사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좋은 파스’라며 건네는 경우가 있어서 피해가 나타나곤 한다.
펜타닐이 전쟁과 관련하여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우선 에스토니아. 러시아와 접해 있는 유럽의 소국 에스토니아는 헤로인이나 코카인이 주류인 유럽 사회에서 특이하게 펜타닐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계기는 2001년 일어난 911사태. 당시 탈레반을 보복하기 위해 미국은 한 달만에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했고 전쟁은 일방적으로 마무리됐다. 전 세계 양귀비 재배의 80%를 담당하던 아프가니스탄이 초토화되자 연쇄적으로 아편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아편을 가공해서 만들던 헤로인 수급도 어려워줬고 전 세계의 헤로인 중독자들은 힘든 시간을 참아내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힘든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2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대거 양귀비 재배에 몰려들면서 아편 생산량이 예전 수치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오매불망 헤로인을 기다리던 중독자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뉴스였을까. 어쨌든 그들은 새로이 공급되는 헤로인을 어둠의 경로로 구매해 다시 중독을 즐겼다.
하지만 대략 일년의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다른 마약으로 갈아탄 사람들도 있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의 중독자들은 당시 새로이 공급되던 펜타닐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누가 펜타닐을 공급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마약상이 공급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펜타닐이라는 신세계를 맛 본 에스토니아의 중독자들은 일 년이 지나 헤로인이 다시 들어왔어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유럽에서도 펜타닐을 즐기는 나라가 나타났다.
하지만 펜타닐로 인해 더 큰 문제를 겪고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 21세기 아편전쟁의 기로에 놓여 있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