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존자
독일군이 전면전을 개시해 프랑스를 침범하고 전격전을 앞세워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을 몰아붙인 1940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의 전황은 이미 결정이 났다. 앞뒤로 고립당한 연합군은 밀리고 밀려 도버해협까지 후퇴했고 이제 곧 독일군의 기갑사단이 밀어붙이면 항복하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이다. 등 뒤에는 바다가, 눈앞에는 탱크부대가 도사리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 어떠한 엄폐물도 전술도 쓸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돌연 독일군의 진격이 멈췄다. 훗날 수많은 군사 전문가들의 머리를 쥐어 짜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결정이 베를린의 수뇌부에서 날아들었고, 현장 지휘관들의 아우성을 뒤로 한 채 탱크는 단 한 대도 진격하지 않았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대치 상태가 이어진 열흘 간 영국은 쓸 수 있는 배는 모조리 징발해 도버해협을 건넜고 패퇴한 군인 30여만 명을 안전히 후퇴시킬 수 있었다. 이후 이 군인들의 대부분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전장에 복귀하였다. 어쩌면 전쟁의 양상이 초반에 결정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기를 놓쳐버린 이 사건을 덩케르크 탈출사건 또는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독일군이 노려보기만 하고 있던 7일째인 5월 31일, 프랑스의 한 전함도 자국 군인을 후송하기 위해 접안했다. 하지만, 패잔병을 수습해 작전 지역을 벗어나던 이 전함은 불행히도 독일 잠수함에 발각되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적함을 그냥 보내는 배는 없다. 독일 잠수함도 프랑스 전함을 요격했고, 피격당한 전함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다. 간절하게 탈출을 원했던 패잔병이나 잠수함의 승조원들 대부분이 죽었음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면에서 헨리 라보리는 운이 좋았다. 우선 전함이 가라앉는 와중에도 살아남았다. 라보리 외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떠다니는 것을 찾아서 싸우다가 자멸하기 일쑤였다. 라보리는 이런 다툼과 한발 떨어져 있으려 했다. 5월 말의 차가운 밤바다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구조선을 기다렸다. 어차피 차분히 기다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명상에 잠겨서 기적을 기다렸다.
영국 구조선이 다가온 것은 새벽이었다. 라보리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구조선으로 올라갔고 그 직후 탈진했다. 이후 구조선에서 기력을 회복한 그는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는 외과의사였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며 그는 수술 성공률을 높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왜 수술이 실패할까?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면 수술이 더 잘 될 것으로 보았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그가 찾았던 해법은 본인의경험이었다. 덩케르크 탈출 시에 그는 차가운 밤바다에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쩌면 체온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그는 환자의 체온을 낮추기 위한 방법부터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본인의 경험은 탈출 시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수술대 위의 환자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수술 부위를 차갑게 하는 형태의 처치로는 환자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라보리는 이제 온도보다는 약물에 주목했다. 당시는 항히스타민제가 개발되어 알러지 환자들을 무척이나 졸립게 만들던 시절이었다. 라보리는 초기 항히스타민제를 이용해 외과 수술에 사용했다. 혹시 아는가? 졸리면 진정될지. 그리고 진정되면 수술 성공률이 올라갈지.
물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과 수술과 진정제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사례가 있었다. 조현병 환자에게 외과 수술 목적으로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했을 때 조현병 환자의 증상이 개선된 것이다. 정신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약물과 같은 물질로 조절할 수 없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라보리는 분명히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라보리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병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관련 학계에서 이슈가 된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외과의사가 개발한 정신병 치료제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검증을 이어가고 결과가 재현성 있게 나타나자 이 물질은 이후 그래도 정신병 치료제가 된다. 클로르프로마진이 탄생한 순간이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