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디슨과 제1차 세계대전의 악연
살리실산은 버드나무 껍질 속 해열성분인 살리신을 가공해서 만드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합성된 것은 1838년, 화학이 한창 발전하던 시기다. 이후 살리실산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던 식물 등이 알려지며 살리실산은 여러모로 의학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해열효과 못지 않게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살리실산은 순수하게 화학적으로도 합성된다. 당시에도 쉽게 구할 수 있던 페놀과 수산화나트륨을 섞고 열을 가해서 만들어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도 나오기 전에 이뤄진 이 반응은 여러 가지 학술적, 산업적 의미를 가지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페놀이라는 일반적인 물질에서 생산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석탄 폐기물이 의약품으로 변신하였다. 이후 이 의약품은 독일 바이엘사의 연구를 거쳐 아세틸살리실산, 즉 아스피린으로 진화한다. 해열제에서 시작한 연구가 관절염 치료제를 거쳐 지금까지 사용하는 소염진통제로 변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연금술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897년의 일이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아스피린의 수급에 변화가 생긴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한 이후 페놀을 구하기 어려워져 버린 것이다. 당시 페놀은 영국에서 전략물품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페놀에 질산과 황산을 가하면 피크르산이라는 물질이 되는데 이 물질은 폭발성이 강해서 군수물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화약이 부족하던 당시 영국 입장에서는 페놀을 자체적으로 소비하기에도 바빴다. 다른 나라에 내다 팔 여유는 없었다.
질 좋은 영국산 페놀의 유통이 막히면서 곤란해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다. 이 미국인은 당시 축음기를 개발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축음기 생산 공정에는 페놀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이 수입해서 사용하던 페놀의 공급이 막힌 것이다. 심지어 당시 미국은 참전하지도 않은 중립국이었다. 그럼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은 페놀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물론 중립국인 미국을 통해 독일로 페놀이 들어갈지 모르는 일이고, 그 페놀이 화약으로 돌아오든 바이엘 아스피린으로 바뀌어 독일의 군자금으로 돌아오든 모두 상상조차 싫은 일이었다. 즉, 영국의 페놀 수출 제한은 충분히 합리적인 조치였다.
물론 에디슨은 불만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페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영국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에디슨은 자체적으로 공장을 세워 페놀을 생산해버렸다. 이 정도 해줘야 발명왕인가 보다. 그런데 이 재능 넘치는 발명왕은 페놀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다. 하루에 12톤을 생산했다. 축음기 생산에 필요한 양은 9톤. 즉, 3톤이 남았다. 이 페놀은 버려야만 할까?
당시 어쨌든 페놀은 여러모로 필요한 물질이었고 영국발 수출 제한 조치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품귀가 일어났던 물질이다. 에디슨은 이 흐름에 맞춰서 남는 페놀을 팔고 싶어했는데 운명적으로 그에게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미국 내 바이엘 지사에서 일하던 휴고 슈바이처라는 사람이었다. 1915년 7월 1일, 그는 에디슨이 생산한 잉여 페놀을 모두 사가기로 계약했다.
난리가 난 것은 그로부터 3주 가량 흐른 7월 24일이었다. 미국 정보 당국이 슈바이처가 사들인 페놀이 독일 본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을 포착한 것이다. 조금 더 조사를 해보니 슈바이처가 에디슨에게 지급한 페놀의 대금 자체가 독일 본국에서 흘러 들어온 활동 자금이었다. 즉, 슈바이처는 중립국인 미국을 거쳐서 전략 물자인 페놀을 수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페놀을 생산한 에디슨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심지어 이때까지도 미국은 중립국이었으므로 법적인 하자가 전혀 없는 계약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법대로만 흘러 가지는 않는 법이다. 같은 뿌리라고 자부하는 영국을 조금 더 응원하던 미국인들은 어쨌든간에 독일에게 도움을 줘버린 에디슨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 계약도 무효가 되었다. 바이엘사나 독일을 향해 비난이 쏟아진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이후 잘 알다시피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고, 독일은 졌다. 독일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 갖은 수를 쓰며 노력했건만, 미국까지 참전한 마당에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지금도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스피린 한 통을 보며 독일이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고민했던 치열함을 잠시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