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둥근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1522년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선단이 실제로 세계일주를 하고 향신료를 가득 가지고 돌아온 것은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특별한 엔진 없이 바람과 노만으로도 세상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 끝에 돈이 있었다. 가치 있는 물건을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는 게 일반적이다. 금을 찾아 황무지를 횡단하듯이, 비트코인을 찾아 쓰레기장을 뒤지듯이 향료를 찾아 사람들은 바다를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 길은 험했다. 마젤란의 선단도 기세 좋게 다섯 척의 배에 265명이 탑승했던 것과는 달리 돌아올 때는 단 한 척의 배에 18명이 살아 돌아왔을 뿐이었다. 심지어 마젤란도 돌아오지 못하고 필리핀에서 죽었다. 그런데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죽은 마젤란과는 달리 대부분의 선원은 병으로 죽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이가 빠지고 피를 흘리더니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죽었다. 바다로 나갈 때 이런 몹쓸 병이 도질 걸 누가 알았겠는가. 원래 이불 밖은 위험하고, 집 나가면 고생이라지만 정도가 좀 심했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을 가장 혹독하게 괴롭혔던 것은 바다도 태풍도 전투도 아닌 선원들의 직업병, 괴혈병이었다.
사실 괴혈병이 꼭 선원들에게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4백년 전 동로마제국 황제의 요청에 따라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야심차게 나섰던 십자군 1차 원정 때에도 비슷한 질병이 발생하긴 했다. 당시는 전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보급로도 무시한 채 신의 뜻을 따라 행군에 나섰다가 쫄쫄 굶은 병사들에게서 이런 질병이 나타났었다. 결국 신의 뜻을 무시하고 같은 기독교 국가들마저 공격하며 약탈했던 것은 숨기고 싶은 과거. 그래도 어쨌든 4백 년이나 지나서 같은 질병이 생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괴혈병 치료에 대한 단서는 정박지에서 나타났다. 중간에 정박할 때 잘 먹으니 안 아팠던 것이다. 그런데 배 타면 다시 아팠다. 배 타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해괴하기 짝이 없는 발병 양상 속에 사람들도 계속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알음알음 답을 찾아 나갔는데 제일 먼저 알려진 것은 신선한 과일이었다. 그리고 입소문을 타고 이 노하우는 조금씩 퍼져 나갔다.
그래도 입소문은 입소문일 뿐, 하루 만에 전 세계로 퍼지는 지금의 SNS와는 다르다. 친구에게만 알려주던 비법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1747년의 일이다. 영국의 군의관 제임스 린드(James Lind)가 선원 열두 명을 여섯 그룹으로 나눴다. 각각의 그룹에는 다른 식단이 주어졌다. 그리고, 입소문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신선한 과일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설정한 나름의 실험군과 대조군은 그 효과를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레몬과 같이 신선한 과일주스를 복용한 그룹에서만 괴혈병이 발병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괴혈병으로 고생하던 다른 환자들에게도 과일주스를 주자 괴혈병이 사라졌다. 대항해시대 이후 선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괴혈병에 대한 해결책은 이렇게 간단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노하우는 원천기술이 되어 국력에 이바지한다. 놀랍도록 간단한 이 방법은 이후 검증을 거쳐 영국 해군의 기본 식단이 되었고, 해군은 괴혈병에 대한 걱정 없이 먼 바다를 오랫동안 항해하며 고차원적인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괴혈병을 정복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고 유럽 대륙을 정복한 후 영국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야심차게 벌였던 트라팔가 해전은 1805년에 일어났는데, 영국 해군의 기동력을 감당하지 못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함대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나폴레옹이 영국 정복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륙봉쇄령으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레몬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다. 트라팔가 해전과 관련하여 레몬 때문에 나폴레옹이 몰락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영국 해군이 해법을 찾은 것이 중요한 일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괴혈병에 대한 원인, 그리고 레몬주스가 괴혈병을 치료하는 기전에 대한 연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뤄졌다. 헝가리의 생화학자인 센트죄르지(Albert von Szent-Györgyi)는 1920년대 후반 동물에서 괴혈병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람 이외 대부분의 동식물은 자체적으로 영양소를 만들어서 레몬주스 없이도 괴혈병을 예방하고 있었다. 사람은 그렇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사람을 배에 태우거나 굶겨서 괴혈병을 유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기니피그도 사람처럼 괴혈병이 나타났다. 세상 어지간한 동식물이 다 만드는 영양소를 기니피그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안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괴혈병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후 센트죄르지는 불쌍한 기니피그에게 동식물에서 추출한 다양한 물질을 테스트하였고 파프리카 등에서 추출한 화합물을 주었을 때 기니피그가 괴혈병에서 회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물질은 이후 비타민C로 명명되어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1930년대에는 비타민C와 관련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라이히슈타인이라는 화학자는 설탕 100그램을 다섯 단계만에 비타민C 40그램으로 전환하는 화학공정을 개발했다. ‘라이이슈타인 공정’이라는 이름의 이 생산법은 로슈사에 그대로 기술이전 되었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은 비타민C를 수월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항해를 앞둔 선원들이 썩기 쉽고 무거운 레몬 대신 가벼운 비타민C만 휴대하고 배에 탑승했던 것도 당연하다.
노하우가 과학으로, 다시 기술로 발전해 가는 과정은 경이롭지만 그만큼 오래 걸린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의 검증이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니 너무 재촉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날 우리가 약국에서 쉽게 구입하는 비타민C에는 5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