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북전쟁과 모르핀
백승만 교수의 '전쟁과 약' 이야기
백승만 기자 news@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3-02-10 17:02
3. 남북전쟁과 모르핀

아편전쟁만큼 명분 없는 전쟁이 있을까? 원래 싸움에 명분이란 게 별 의미 없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편을 팔기 위한 전쟁은 너무 했다. 영국도 민망했는지 의원들의 투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251 대 242. 9표 차이로 전쟁은 통과되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그렇게 아편을 파는 전쟁에 군대를 동원하였다.

유럽이 오랫동안 중국에서 도자기나 종이, 화약, 비단을 수입하고 동쪽 끝에 위치한 황금의 나라를 동경했으며, 몽골군과 같은 기마대를 두려워하긴 했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자본력과 산업혁명으로 쌓아 올린 기술력, 수많은 내전을 거치며 축적한 전투력은 청나라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아편전쟁은 그 차이를 확인시켜 준 거대한 시작이었다.

아편의 관점에도 그랬다. 아편전쟁 이전부터 삼각무역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던 아편은 전쟁 이후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생산량이 늘어났다. 당시 청나라 성인 열 명 중 한 명이 아편 중독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가 아편에 취해 있었다. 이후 끝없이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공급도 늘어난다. 청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양귀비를 기르고 아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청나라를 망가뜨린 아편은 청나라 밖으로 화교들과 함께 빠져 나왔다.

이때 사람들은 묘수를 낸다. 아편을 정제해 진통제로 사용한 것이다. 19세기 중반은 전쟁이 일상적이던 시기였다.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현지인과 싸웠고, 이후에는 자기들끼리 싸웠다. 미국도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였던 시기다. 자연스럽게 전투로 인한 부상병도 늘었고 빠르고 효과 좋은 진통제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그런 측면에서 아편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이미 대량생산으로 인해 충분히 가격도 내려가 있었기에 더욱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아편의 주성분인 모르핀은 1804년에 이미 분리되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아편이라도 모르핀의 함량은 20%를 넘기 어렵다. 따라서 아편을 그대로 진통제로 쓰기는 어려운 노릇. 하지만 모르핀은 가능했다. 그리고 1850년대에는 피하주사기도 개발되었다. 이렇게 모르핀이 담긴 주사기는 참혹한 전투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부상병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제2차 세계대전만 해도 부상병들에게 모르핀을 줄 때는 전투모에 M1, M2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를 했다. 모르핀의 과다투여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는 이런 지식이 없었던 까닭에 아프면 무조건 모르핀을 넣어주었다. 모르핀을 위해 엄살을 부리는 부상병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많은 전쟁과 함께 더 많은 부상병이 나타났고 그들은 상당수 모르핀에 취해 있었다. 당시 ‘군인병(soldier’s disease)’으로 불렀던 질병의 정체는 바로 모르핀 중독이었다.

이후 모르핀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거대한 사건은 모르핀을 끝없이 소비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당시 아편을 공급하던 대표적인 국가인 튀르키예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일본은 당장 아편과 모르핀이 필요했기에 자신들이 통치하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양귀비 재배 및 아편 생산을 권장한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터키의 생산량이 다시 회복되자 한반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그냥 풀어버렸다. 당시 우리나라 자료를 보면 ‘주사옥’이나 ‘모루히네’같은 단어들이 신문에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이러한 배경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다른 건 없었다. 다시 우리나라에서 아편을 제조했고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마지막을 위해 아편과 모르핀을 대량 비축하긴 했지만 더 거창한 원자폭탄으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남겨둔 아편과 모르핀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미군이 나눠서 썼다. 해방이 되었는데도 씁쓸한 느낌이다.

이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아편과 모르핀, 그리고 헤로인과 같은 아편계 마약은 주된 단속의 대상이 된다. 이유는 북한군. 언제 밀고 내려올지 모르는 북한군을 위에 두고 맘 편하게 마약에 빠져 있는 국민들이 못미더웠는지 1957년 마약법을 제정하고 해당 마약을 강력하게 금지시킨다. 그 여파인지 아편계 마약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다. 2021년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 향정신성의약품(향정), 대마로 분류했을 때 우리나라 마약류 범죄유형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향정으로 65.8%이다. 다음은 대마, 23.4%. 마지막이 아편계 진정제나 코카인이 포함된 마약인데 정작 그 비중은 10.8%에 그친다. 그 10.8%에 해당하는 1,745건 중에서도 대부분에 해당하는 1,033건은 ‘밀경’이다. 즉 양귀비를 몰래 재배하다가 걸리는 것이다. 시골에 있는 어르신들이 법을 잘 모르고 약으로 쓰기 위해 양귀비를 기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약류 관리법 상 어쨌든 불법이다. 이런 경미한 사례를 제외하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도 아편계 마약은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다.

다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모르핀은 어느덧 헤로인으로 변신해서 사회에 편입되었고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합성 마약인 펜타닐은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모르핀의 백 배 정도 되는 효능의 물질이다. 그만큼 중독성과 독성도 강해서 관계자들을 떨게 하는, 마약의 끝판왕이기도 하다.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가 있다.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