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
나는 1990년대에 서울대 약학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내가 다니던 때만 해도 –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약학대학 학생들은 여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소속한 약학과는 정원 40명 중 70%인 28명이 여자였다. 남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우리 남자들은 여러가지 설움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어 봄에 버들골에서 과단합대회를 할 때 남자들이 좋아하는 축구보다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피구와 같은,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신나지 않은 놀이를 해야만 했다.
이처럼 약대의 학부생활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은 소수자가 되어 다수인 여성의 의견을 따라야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는 갑자기 큰 장점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학부를 졸업하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지원했기에 일부 인기있는 실험실은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은 주로 여자 지원자들에게 해당했다. 왜냐하면 실험실들이 남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험실이 남자를 선호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석박사 통합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석사과정을 먼저 거쳐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면 이것으로 군대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 병역특례제도 – 일단 석사과정에 입학한 남자들은 박사과정이 끝날 때까지 약 7여년간 실험실의 일꾼이 될 수 있다. 반면 여자들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꼭 진학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험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일꾼으로 보기 어려웠다. 또 학위 과정 중 결혼하게 되면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가정일에 좀 덜 매이기 때문에 실험실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원생을 선발할 때 이러한 실험실의 남자 선호경향이 학부때의 학업성적보다 더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남자들보다 성적이 우월한 여자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입학하고 첫 2~3년동안 대부분의 남자들이 학업보다는 과외할동에 치중하는 동안 여자들은 수업을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숙제도 베끼지 않고 스스로 다 해내었다 (아마 여자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들끼리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지 모르겠다). 이처럼 여자들의 학부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대학원에 지원한 남자들의 합격률은 여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내 기억으로는 떨어진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 준비동안 나는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로 안심이 되곤 했다: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
지금 우리나라의 성평등 정도는 30년전보다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남녀고용평등법도 제정되었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인다. 다시 약대의 예를 들어 보자.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약대의 여성 교수진 비율은 각각 27%, 24%, 30%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주요 약대 교수진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다. 반면, UCSF 약대의 전체 교수진 104명 중 47%가 여성이다 (여성학생의 비율이 60~70%에 달하는 UCSF도 아직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 약대의 경우 과거에 있었던 실험실의 남자학생 선호 영향으로 여성 교수진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낮을 수 있다.
실제로 젊은 교수진인 부교수와 조교수의 여성 비율을 보면 서울대는 38% (8명 중 3 명)로 전체 교수에서의 비중보다 약 10%정도 더 높다. 이는 개선된 비율이기는 하지만 UCSF 약대의 같은 직급에서의 비율인 64% (22명 중 14명)와 비교할 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약대 교수진의 남녀비율이 한 나라의 성평등 정도를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대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이 입학하는 곳이다. 따라서, 약대의 여성 교수진의 비율이 낮으면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더 선호해온 다른 직군에서 여자들의 비율은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성평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 법적으로 성평등을 뒷받침하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지 모르겠다. 법으로 성평등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차별은 오랜 기간동안 사회적 문화적으로 뿌리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여성차별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바로 여성과 관련된 언어일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 대학생은 그냥 대학생으로 부르지만 여자 대학생은 여대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다. 기자, 배우, 교수 등 직업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에도 남성을 나타내는 “남”은 들어가지 않지만 여성을 나타내는 “여”가 들어간다. 이처럼 “여”가 들어가는 이유는 여자가 그 직군에서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따로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소수가 다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별이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단어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여성차별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 우리가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나 행위들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표현이나 행위들을 영어로 microaggession (미세하게 괴롭히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라고 부르는데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 후보가 형수에게 했다는 욕설의 표현은 그 대상이 남성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또, 여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 미디어에서 보도할 때 남성에 비해 좀 더 부정적이고 센세이셔널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외에도 “노처녀 히스테리”와 같은 표현들도 여성에 대한 microaggression이다. 이와 같이 여성차별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남녀고용평등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남성지원자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사항들 - 남자친구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 아기 가지면 그만 둘 거냐,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 월급을 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 등을 여전히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microaggression의 예).
UCSF는 이러한 구조적 편견과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직원들에게 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교수의 임용과 승진심사에도 대상 교수가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도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는 작년에 네 시간씩 이틀, 총 8시간동안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inclusion)에 대한 워크샵을 들었었다. 이 때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나도 소수자들에 대해 편견과 차별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고 언어와 행위를 통해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은 오랜기간동안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면 개선이 가능하다. 그리고, microaggression을 목격하게 되면 가해자에게 이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피해자를 지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microaggression을 보고도 침묵하면 이를 계속 지속시키는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30년전 대학원 진학 때 남자로 때어난 것을 위안으로 삼았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같은 과 여자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너는 남자라서 걱정안해도 돼”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나의 힘을 보탤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