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멜라토닌 논란, 어떻게 봐야하나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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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천연 수면보조제로 알려진 멜라토닌 복용이 심부전 위험을 90% 높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여러 매체에서 이 결과를 인용하며 멜라토닌에 대한 경고성 기사를 쏟아냈다. 11월 초 미국심장협회(American Heart Association)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이지만 아직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은 미출간 예비연구이며 학회 초록 형태의 발표이다. 위험이 90% 증가한다니 차이가 매우 커 보이지만 관찰연구이므로 연관성만 보여줄 뿐,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연구진은 건강기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불면증 진단을 받은 전 세계 성인 130,828명(평균 55.7세, 여성이 61.4%)의 5년간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중 65,414명이 최소 1회 이상 멜라토닌 처방을 받았으며, 최소 1년 이상 복용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을 비복용군(의료기록상 멜라토닌 복용 기록이 없는 사람)과 비교하여 이후 5년 동안 두 그룹의 심부전 발생 위험을 추적했다. 이미 심부전 진단을 받았거나 다른 수면제를 복용한 사람은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연구진은 멜라토닌 복용군과 비복용군의 특성을 최대한 일치시켰으며, 심부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건강 요인들을 보정했다.

그 결과, 멜라토닌 복용군의 심부전 발생률은 4.6%, 복용 기록이 없는 그룹은 2.7%로 나타났다. 멜라토닌 복용자는 심부전 위험이 약 90% 높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심부전으로 입원할 가능성이 약 3.5배, 모든 원인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2배 가까이 높았다.

이번 연구를 이끈 에케네딜리추쿠 은나디(Ekenedilichukwu Nnadi) 박사(뉴욕 브루클린 소재 SUNY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 내과 수련의)는 “멜라토닌은 일반적으로 매우 안전한 보충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장기 복용이 심부전·입원·사망률 증가와 연결된다는 건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부 언론에서 ‘멜라토닌이 심부전을 일으킨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보다 경고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마 은나디 박사가 국내 기사 제목 “잠 잘 자려고 열심히 먹은 멜라토닌...심장 공격하고 있었다”를 본다면 크게 한숨을 내쉴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 연구에는 한계가 많다. 그 중 하나는 의사 처방을 통해 멜라토닌을 복용한 사람만 복용군에 넣었다는 점이다. 영국과 유럽연합 일부 국가에서는 멜라토닌을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없지만,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처방 없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도 멜라토닌은 처방약이다. 식물성 멜라토닌이라며 광고하는 제품들이 있지만 효과나 순도를 보장하기 어려운 일반 식품이다.) 이런 이유로 멜라토닌 비복용군에도 실제로는 멜라토닌을 복용한 사람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구진은 비처방 멜라토닌 복용자에 대해 따로 조사하지 않았으므로 명확한 비교가 어려워진다.

또한 이 연구에는 멜라토닌 복용량과 불면증의 중증도(severity), 복용 후 수면 개선 여부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선에서 저녁 시간대에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이제 잘 시간이라는 신호를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멜라토닌의 효과에 대한 근거는 일관되지 않고 제한적이다. 시차 적응이나 교대 근무로 인한 수면 리듬 장애에는 소량의 멜라토닌 복용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만성 불면증에는 사용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더 생긴다. 만약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처방약 멜라토닌이 필요했는데, 실제로 효과가 없었다면, 불면증 자체가 심부전 위험을 높인 요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하여 심박수와 혈압이 높아지고 고혈압, 심근경색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아직까지 멜라토닌이 심부전 위험 증가와 연관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연구에서는 멜라토닌이 관상동맥질환 예방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일부 연구에서는 심부전 환자의 경우에도 긍정적 효과를 보여줬다. 도발적 연구이지만 추가 연구 없이 섣부른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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