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항노화 인플루언서 믿어도 될까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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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젊음을 되돌려주겠다는 말보다 강력한 마케팅 도구도 없다. 나이 들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과 하버드 유전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바로 그 욕망을 상품으로 만든 대표 주자다.

존슨은 18세의 몸으로 돌아가겠다며 1년에 27억 원을 쏟아붓는다. <노화의 종말>이란 저서로 유명한 싱클레어는 "노화는 질병이며 치료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전 세계 팬덤을 구축했다. 국내 언론도 이 둘을 자주 소개한다. 하지만 화려한 슬로건과 달리 그들이 내세우는 사례와 숫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론이라기보다 세련된 홍보 문구에 가깝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2024년 4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싱클레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가 공동 창업한 여덟 개 회사 중 절반은 파산하거나 사업을 중단했고, 나머지도 인간 대상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적포도주 성분 레스베라트롤을 기반으로 항노화 약물을 개발한다며 설립한 서트리스다. 이 회사는 거대 제약사 GSK에 7억 달러 이상에 인수됐지만, 안전성 문제로 임상이 중단되고 2013년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싱클레어는 여전히 레스베라트롤을 먹고 있다.

고령 여성의 난자 에너지를 회복시킨다는 기술을 내세운 오바사이언스는 한때 주가가 53달러까지 치솟았지만, 효과 부재가 확인되자 1달러 미만으로 폭락했다. 비만과 지방간 질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했던 코바 역시 안전성 우려와 실망스러운 결과로 2022년 주요 약물 개발을 중단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공동 창업한 회사의 강아지용 항노화 간식이 노화를 역전시켰다고 주장했다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자신이 설립한 학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싱클레어가 학계의 명성을 무기로 삼았다면 브라이언 존슨은 소셜미디어를 무대로 삼았다. 그는 자신을 실험체로 삼아 하루 8시간 수면, 수십 종의 보충제, 주기적인 의학적 시술을 포함한 극단적 건강 루틴을 실행하고 전 과정을 공개한다. 이런 방식은 과학적 실험 설계와는 거리가 멀다. 100개가 넘는 개입을 동시에 진행하니 어느 하나의 효과를 구분할 수 없고, 대조군도 없으며, 데이터와 방법론 역시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재현성 없는 개인 체험담은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이 그의 프로토콜은 실험조차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이들 항노화 인플루언서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과학적 엄밀성이 부족하다. 소규모이거나 부실한 연구를 과장하고, 동물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며, 개인 경험을 일반화한다. 여기에 상업적 이해상충까지 겹친다. 자신이 투자하거나 창업한 회사의 제품을 과학적 검증 없이 홍보하고, 부정적 결과나 부작용은 축소한다. 그러면서도 대중의 불안을 자극한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고, 곧 해결책이 나온다는 희망을 판매한다.

그러나 진정한 항노화 연구는 훨씬 더 느리고 지루하다. 게다가 많은 비용이 든다. 적절한 대조군과 충분한 표본, 장기 추적 관찰, 독립적인 기관의 검증이 필수다. 긍정적 결과뿐 아니라 부정적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연구 설계와 원시 데이터는 엄격한 동료평가를 거쳐야 한다.

인플루언서들의 과장된 주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먼저 화려한 홍보 문구보다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고, 한 사람의 체험담이 아닌 다수의 임상시험 결과를 참고해야 한다. 새로운 약물이나 시술을 고려한다면 자격 있는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고,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 안전하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는 이미 검증된, 가장 확실하고 지속 가능한 항노화 전략이다.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과학은 기적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검증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에서만큼은, 유튜브 영상 속 매혹적인 약속보다 학술지에 실린 차가운 데이터를 믿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노화를 늦추는 길은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느리지만 단단한 과학의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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