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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 때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은 더 조심해야 한다. 약이 우리 몸을 더위에 민감하게 만들고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약과 더위는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첫째, 약이 우리 몸의 체온 조절을 방해하여 더운 날씨로 인한 피해 위험을 증폭시킨다. 둘째, 고온이 약 성분을 분해하거나 손상시킬 수 있다. 셋째, 약물이 피부를 햇빛에 더 민감하게 만든다. 모든 약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만 흔히 쓰이는 약 중에도 우리 몸을 더위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일부 사람에게 땀을 과도하게 나게 만들 수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 조절뿐만 아니라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시상하부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삼환계 항우울제는 땀이 덜 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면 탈수 위험이 증가하고 반대로 땀이 너무 적게 나면 체온을 낮추기 어려워져 인체가 과열될 수 있다.
항우울제 복용 중에 과도하게 땀이 나는 부작용(발한 장애)을 경험하는 사람 비율은 전체 사용자의 4%에서 최대 22%까지 이른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나 조현병 치료제에서도 발한 장애와 이로 인한 체온 조절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약 복용 중에 평소보다 땀이 너무 많거나 적게 느껴진다면 의사, 약사와 상담해보는 게 좋다. 무더위가 계속된다고 약 복용을 스스로 중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갑작스런 중단은 우울, 불안 증상을 악화시켜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혈압약으로 널리 쓰이는 이뇨제도 인체를 더위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뇨제는 말 그대로 소변을 통해 수분을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체액이 줄어들면서 탈수, 저혈압, 심박출량 감소와 그로 인한 실신, 낙상 위험이 커진다. 변비약(완하제)도 배변을 유도하면서 장내 수분을 배출하여 탈수 위험을 증가시킨다. 베타차단제는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고 일부는 혈관 확장을 감소시켜 열 발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탈수를 방치하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와 같은 신독성 약물로 인한 신혈류 감소 및 신장 손상 가능성도 커진다.
여름에는 탈수를 막기 위해 적절한 수분 섭취가 중요하지만 약 복용 중에는 더 중요하다. 일부 이뇨제, 혈압약(ACEI, ARB) 복용 중에는 갈증에 둔감해져서 물을 적게 마시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수가 심해지면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되어야 하는 약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독성이 증가할 수 있다. 리튬처럼 혈중 농도가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약이 특히 위험하다.
뜨거운 여름 햇빛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일부 항진균제(플루시토신, 그리세오풀빈, 보리코나졸)와 항생제(메트로니다졸, 테트라사이클린, 플루오로퀴놀론)는 피부를 자외선에 민감하게 만들어 일광화상과 같은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뇨제, 소염진통제, 여드름 치료제 중에도 유사한 부작용을 가진 약이 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외우기보다 내가 사용 중인 약이 광과민성과 관련되는지 확인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 경우에도 약 사용을 중단할 수는 없으므로 햇빛 노출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모자와 긴 소매 옷을 착용하고, UVA와 UVB를 모두 차단하는 SPF 30 이상의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을 습관으로 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더위는 약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온에 노출되면 약물 전달 장치가 손상되거나 약 성분이 분해될 수 있다. 천식 치료용 흡입기는 차 안처럼 뜨거운 환경에서 터질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 때 응급처치로 사용하는 에피펜과 같은 약물 전달 장치는 더위에 노출되면 오작동하거나 약물(에피네프린)을 적게 전달할 위험이 있다. 인슐린처럼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은 고온에 방치되면 효과가 떨어진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위험하지만 약 사용자에게는 더 큰 위협이다. 여름을 무사히 나기 위해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에 대해 잘 알아두고 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