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전자의 추격을 가벼이 여기다가 파괴적 기술력에 추월당한 사실을 아쉬워하며 여전히 삼성전자를 일본기업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려 한다. 이는 마치 유럽 제국이 선진 문물을 전해줬다고 미합중국이란 신생국을 낮춰 보는 심리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미래는 내 편이 아니다.
시장의 변화 속에 기회가 있다
1980년대 일본기업이 생산한 D램의 대부분은 미국의 대형 컴퓨터 제조사가 사용하였다. 기업형 컴퓨터 회사들은 무려 25년 동안 사용해도 고장이 없을 정도로 부품에 대한 품질보증을 요구했고, 이러한 D램을 만들어낸 일본 기업들은 세계시장의 80%를 석권하였다.
1990년대부터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열리면서 PC용 D램 성능은 장기적 내구성 보다는 PC 교체주기인 단 5년만 버티면 충분하므로 적정 기술에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던 후발주자 삼성전자의 전략이 적중하였다. 폭증하는 PC 수요에 부응하여 값싼 D램을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던 삼성전자는 세계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발돋음했다.
사후분석에 따르면,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 추락의 본질은 과잉기술로 과잉품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선진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자만심 때문에 컴퓨터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 기술의 후진성을 자초한 것이다. 일본의 D램 산업은 한국의 ‘파괴적 기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서도 완패한 것이다.
시장환경이 또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거나 예측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는 급격한 고령화이다.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저하되는 가운데 이제는 세계적 경제 위기설까지 언급된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반드시 준비해야할 분야는 고령자 돌봄체계의 구조개혁이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57.6%는 비록 불편해도 지금 사는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했다. 사실 대다수의 노인은 병원이나 돌봄시설에서 생을 마치는 상황이고, 불충분한 재가서비스 때문에 돌봄은 가족에게 매우 큰 부담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돌봄 지출의 급증세를 대비함으로써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해야 한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은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총체적인 돌봄 불안감을 해소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노인들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생활을 이어가도록 주거·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정책이다. 2018년 11월에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이 발표됐고, 2019년 6월부터 2년간 전국의 16개 시군구에서 지역 자율형 통합 돌봄 모형을 도출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전개하였다(그림1).
이 정책의 비전은 ‘노인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용국가’이며, 목표는 2025년까지 서비스 제공체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에 약업샹태계에 종사할 이들은 ‘지역사회 통합 돌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절한 대응 이야말로 향후 30여년 간 ‘디지털 전환’ 못지않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주요한 축이란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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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체계(출처: 보건복지부 정책자료)
아프니까 청춘이듯 변하니까 시장이다
시장(市場)의 사전적 정의는 ‘경제학적으로 권리, 용역, 제품(또는 재화)의 소유권 교환을 촉진하기 위하여 경제학적인 또는 경제학적 방향을 가진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전된 자연적인 사회구조’이다. 시장이 변하는 까닭은, 거의 항상 미리 예측할 수 없던 새로운 정보와 기술의 등장 때문이다. 정보와 기술은 재화와 용역을 변화시키고 이들의 상호작용도 복잡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팬데믹 같은 급격한 변화에 대응방안을 고심했듯이, 이제 엔데믹 시대에는 경기 활성화란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변화에 끊임없이 대응하고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확성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차원의 비즈니스를 추진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이나 개인은 변화의 빠른 속도를 쫓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CEO의 63%는 조직의 프로세스와 실행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가속격차’를 느낀다. 가속격차란, 새로운 기회로 인한 변화속도 대비 어떤 조직이 그 기회를 활용하는 능력 사이의 격차를 말한다. 이것은 계속 커지고 있으며 여기에다 시장 변동성, 데이터 볼륨 같은 부담요인까지 커질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가속격차 현상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었다. 팬데믹 시기에는 약업계의 모든 조직의위기대응력이 도전 받았고, 새로운 모범사례가 집중조명을 받았다. 경영학자인 피터 쉬램프는 팬데믹 때문에 잠시 잊고 지냈던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과 조직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1)지속적 인재정비, (2)실시간 실행, (3)완전한 가시성으로 불확실성 완화, (4)단기간에 비즈니스 프로세스 재구성, (5)새로운 미래 구상, (6)인적자원의 성과향상, 그리고 (7)현실적인 효과 측정을 제시하였다.
시장과 미래는 큰 시야와 적극적 협의를 통해서 열린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과 대한간호협회(간협)의 간호법 입법과정에서 이견이 팽팽하다. 핵심쟁점은 다음과같다
첫째, 간호법이 '누구를 위한 법'이냐’이다. 의협과 간무협은 이 법이 간호사의 권리와 이익에 국한돼었다며 모든 직역이 균등히 보상받고 처우개선 혜택을 누릴 권리를 강조한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점진적인 개정을 통해 조금씩 간호사의 권한이 늘어날 것에 위기감을 느끼는 듯하다. 반면, 간협은 초고령 사회 진입, 만성질환 증가에 따른 간호인력 수요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고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불법진료로부터 간호사 및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어 국민의 건강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법안에 포함된 '지역사회'라는 문구도 쟁점이다. "간호사의 의료기관 밖에서의 업무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국민건강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므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 체계(노인 커뮤니티 케어) 구축을 위한 간호·돌봄 인력과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 숙련된 간호사가 절실하다고 반박한다.
셋째, 간호사의 '단독개원 가능 여부'도 논란이다. 이 법안에서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이라고 규정했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범위는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진료에 필요한 업무'다. "단독개원의 근거가 마련되면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로 국민건강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에 대하여 "간호사의 단독개원은 불가능하다"며 “간호법에는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규정이 없고 현행 의료법상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엄격히 제한하여 간호사의 의료기관 개설을 통한 진료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간호법의 제정으로 "국가와 지방정부가 병원들에게 간호인력 처우 개선에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되므로 의사가 손해볼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네째,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느냐'에서도 의견이 상충된다. "간호법(안)에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규정이 있으므로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며", "간호조무사의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키고 장기요양기관 등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의원급 의료기관에 간호사를 의무배치하지만, 간호법에 의료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며, 애초 간호법에 있던 '간호법이 다른 법률에 우선한다'는 내용이 조정안에서 삭제돼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 제정은 무산되었고, 각 직역의 주장과 저항은 이어지겠지만, 더욱 황당한 사실은 간호사들의 의료현장에서 의료법에 대한 준법행위로써 저항의 뜻을 밝힌다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편법과 위법이 일상화 되었는지, 왜 그간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가치 혁신의 지름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57%의 조직에서 디지털 전략이 항상 또는 때때로 비즈니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속격차는 전문서비스(74%), 헬스케어(73%) 업종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점은 조직의 문화와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꼽는다.
정부는 오는 6월 1일부터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및 약배송 사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고시를 철폐하고, 일부 보완한 비대면 진료체계를 시범사업 형식으로 지속한다고 발표하였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시장변화에 약업계는 어떻게 조직의 문화와 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고유한 가치와 차이를 창출할 것인가?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