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약대생 연합동아리 소속 학생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사전질문지를 5페이지나 작성해주었기에 약대생들이 품은 고민의 깊이와 미래를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어 유익한 기회였다. 질문의 요지는, 혁명적인 디지털 변화 환경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다양한 신기술들이 약사, 약국, 악업의 미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이런 변화의 흐름에 그동안 약업계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학생들은 어떤 준비와 태도가 필요한지 등이었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주변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조직의 수용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면을 꼽기도 한다. 현용 ChatGPT 조차도 질문의 창의성에 따라서 답변의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이 지적된 바 있다. 약사의 직업적 영속성에 앞서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됐던 21세기 생존기술 3개 영역 16가지 중에서 ‘핵심역량’으로 분류되었던 (1)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기술, (2)창의력, (3)의사소통기술, (4)협력기술을 중심으로 재고찰을 해보자.
미래를 위해 꼭 갖춰야 할 능력 10가지
2018년도에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 미래 노동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능력 10가지 및 점차 가치가 축소될 능력 10가지가 발표되었다(그림1). ‘가치가 떨어질 능력’으로는 (1)손재주, 지구력과 정확성, (2)기억력, 언어능력, 청력, 공간 지각력, (3)재무, 자원 관리, (4)기술설치와 유지보수, (5)읽기, 쓰기, 수학, 능동적 청취, (6)인사관리, (7)품질관리, 안전관리, (8)조정, 시간관리, (9)시각, 청각, 연설능력, (10)기술이용, 모니터링, 조종 등이었다.
반면, ‘가치가 올라갈 능력’으로는 (1)분석적 사고와 혁신, (2)능동적 학습과 학습전략, (3)창의성, 독창성, 추진력, (4)기술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5)비판적 사고와 분석, (6)복잡문제 해결능력, (7)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8)감정지능, (9)추론, 문제해결과 추상화, (10)시스템 분석과 평가였다. 약 5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과연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경제시스템의 구조와 신기술의 파급력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다는 미래에 어떤 직업이 생기고 없어질 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데 직업의 명칭과 역할도 애매해졌다. 일례로, ‘프로젝트 매니저’와 ‘기술 디자이너’는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일까? 따라서 구시대의 관점으로 어떤 직업의 미래 전망을 논하기 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던 미래에 각광받게 될 '능력'에 대한 고찰과 준비에 집중하는 것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비하는 적절한 자세일 것이다.
능력과 역량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에게 목표의식을 품게 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전진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 장점과 단점도 깨닫고 무엇을 더 배우고 단련할 지 정할 수 있다. 미래에는 노동력의 제공 방식이 정규직 등 전통적 방식 못지않게 특정 조직에 몸담지않고도 특정한 문제해결역량만 제공하는 프리랜서 업태가 확산될 것이기에 자신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직업의 명칭’보다는 ‘보유 역량 수준’에 더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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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력은 두려움은 떨치고 즐거움을 안을 때 생긴다
수용력(work capacity)이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여력을 뜻한다. 그래서 바다를 일컬을 때는 수용력이 커서 육지로부터 밀려드는 엄청난 오염물질까지 수용하여 희석, 정화시킨다고 표현한다. 또한, 어떤 피훈련자가 견디고 회복할 수 있는 훈련스트레스의 총량도 수용력이라고 표현한다. 수용력이 큰 피훈련자란 혹독한 훈련의 양과 강도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다. 견뎌낸다는 말은 훈련으로 인한 피로감을 회복하며,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정도 역시 크다는 의미이다.
그렉 누콜라스는 ‘싱크대 비유(The Sink Analogy)’로써 이를 잘 설명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의 양은 훈련스트레스의 양을, 배수구 크기는 피훈련자가 보유한 수용력의 크기이다. 즉, 배수구가 작은 싱크대(훈련자)는 수도로부터 물이 많이 쏟아질 때(스트레스가 클 때) 물이 넘치 듯 그 훈련을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배수구가 큰 싱크대는 아무리 많은 물이 쏟아져도 넘치지 않듯 수용력이 큰 피훈련자는 훈련스트레스를 모두 이겨낸다(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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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약업생태계는 디지털 기술의 급변으로 인한 시장환경과 제도변화에 대응하느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우려감, 허탈감, 공포감은 속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일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의 원인은 대부분이 불안감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감에 휩싸여 고민만 하기보다는 확신을 품고 신속히 일에 착수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해법이 제시되기도 한다.
더불어, 부정적 소식이나 가짜뉴스, 출처 없는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거나 편향된 속성의 블랙미디어를 활용하거나, 대안없이 흠집내기 내용을 활자화 하고, 특정 뉴스나 기사에 자극적인 댓글을 달면서 이를 비판이라고 착각하는 미성숙함 보다는, 건설적 비평과 유용한 대안제시, 격려와 칭찬하는 약업문화가 속히 정착되면 좋겠다.
상상력은 창조력과 더불어 흥미를 품은 연구로 발휘된다
상상력이란, 선입견이 배제된 유연한 사고이며 특히 젊은이들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상상력도 고통이 수반되는 지난한 훈련의 결과임도 인정하자. 고민도 스마트하고 체계적으로 해야 적절한 답을 도출하는 능력도 잘 갖춰진다. 전략의 수립이나 실행은 마치 건축처럼 적당히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작은 집 한 채를 짓더라도 지세파악, 기후와 계절의 변화, 천재지변의 위험성, 비용과 기간의 산정, 개념설계, 공간배치, 상세설계, 자재선정, 기초공사, 골조공사, 가구배치 등 단계별 세부역량이 모두 필요하다. 난이도에 따른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면 상상력과 창조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창조력이란 구체적 역량으로 심화되는 과정에는 흥미에 바탕을 둔 연구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즐기는 자를 머리 좋은 자가 이길 수 없듯이 내가 하는 일, 나의 관심영역, 전문영역에서 깊이 있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번뜩이는 창조력의 발휘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림을 그릴 때 굵은 윤곽선도 중요하지만 세밀한 선도 잘 그려야 멋진 그림이 완성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미래의 작업방식 혁신은 CIO가 추진해야
필자는 약업계가 처한 걱정과 두려움을 감소시켜줄 근본적 대안으로 약사, 약국, 약업의 미래 업무를 위한 전략과 모델과 교육을 체계화, 고도화 할 것을 제안한다. 정보통신기술을 빼고는 이를 논할 수 없기에 많은 우수 기업들은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란 직책을 두어 이를 관장하는데, 미래의 업무체계수립이 디지털 혁신의 가속기일 때 CIO는 조직에서 리더역할을 더욱 심도 있게 수행해야 한다.
CIO란, 기술변화가 조직과 구성원의 책임과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바른 시야를 갖게 함으로써 혁신역량과 경쟁력을 높이고 조직문화의 변화까지 유발시키는 핵심리더이다. 이는 약업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대한약사회가 약사 업무의 미래상을 전적으로 모두 계획하고 성취하기 어렵다. 약학대학도 현재는 이 기능과 비전이 매우 취약하다. 필자의 견해로는, 약계의 CIO 기능은 약학정보원이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대의 CIO가 해야할 업무의 예를 여기 소개한다. 첫째, 최신기술인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로 조직의 지식관리를 변혁시켜야 한다. 미닝의 CEO인 이셰이 카미엘은 “생성형 AI는 우리가 사용하는 콘텐츠와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까지 업무의 미래를 다시 상상하게 만들었다. 정확성과 신뢰성에 대한 도전은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이 기술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고가치 정보를 신속하고 규모에 맞게 발굴하는 데 그 위력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성형 AI가 업무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지식관리와 검색경험이다. 향후 10년간 생성형 및 대화형 AI기능을 기반으로 검색 및 지식관리에 대한 소비자 중심성이 강화될 것인데, 약무서비스에서는 특히 환자에 대한 복약지도와 맞춤상담 분야가 크게 변모할 것이다.
둘째, CIO는 대중개발 거버넌스 모델을 정의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수용성 높은 플랫폼의 구축을 주도해야 한다. 현재 개별약사의 전문성과 차별성은 다채로운 유형의 상담과 고객관리 스킬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이미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셀프서비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툴을 개발하여 데이터 기반 조직을 지원하며, 운영 스프레드시트에 대한 의존도까지 낮추는 추세이다.
약사와 약업계 구성원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핵심은 나는 프로그래밍 전문가도 아닌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과 변화의 물결이 순식간에 내 주위를 에워쌌다는 현실이다. 작년에 약정원에서는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더불어 이런 취약한 약국생태계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신규플랫폼 구축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약료서비스플랫폼(PSP)’ 개념을 수립 중인데, 현재 약국시스템과 약사들에게 자기만의 특화되거나 전문화된 경쟁력을 발휘하도록 다채로운 ICT 비즈니스 툴을 개발, 공급하려는 목적이다.
셋째, CIO는 업무를 초자동화하고 실시간 분석 체계를 구축하여 의사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 필자가 20년전 대기업에 근무할 당시, 전국에 산재한 영업점의 매출, 주문, 재고, 반품 데이터가 그룹회장에게 정리, 분석, 보고되기까지 15일쯤 소요되었다. 그러나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을 도입한 뒤에는 단 2초만에, 전국의 수백 개 매장과 수천 명의 영업인력들이 활동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 집계, 관리되는 기술의 파워를 목도하였다.
약무서비스 업무의 자동화와 의사결정력까지 가속화시켜야 한다. 자동화와 가속화가 약무의 오류를 증가시키고 정확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이제 기업의 CIO는 작업 및 워크플로우에서 로봇처리자동화(RPA)를 채택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동화, 로우코드 및 머신러닝 기능의 통합인 ‘초자동화’에 목표로 현명한 의사결정을 가능한 업무시스템을 갖춰야한다.
고대에는 일식이나 월식의 발생,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것을 예측하거나 피할 수조차 없었다. 당연히 두려움과 염려가 컸겠지만, 지금은 제임스 웹이라는 전파망원경이 우주공간에서 수억~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들의 장엄한 모습을 관측, 분석, 예측까지 제공한다. 이처럼 CIO는 창의적 사고에서 시작하여 혁신적으로 재창조된 워크플로우를 구현하고 조직구성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미래 업무 변화의 중심에 서야한다. 약업계도 이런 기능과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하여 두려운 디지털 변혁이 아니라 즐거운 디지털 변혁을 이뤄보자.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