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체온1도 올리는 게 좋을까
정재훈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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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날씨가 쌀쌀해지면 체온 1도 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뜬다. 체온이 1도가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감소하고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내려갈 때는 30퍼센트인데 올라가면 왜 500-600퍼센트인가? 계산부터 뭔가 이상하다. 그러니 팩트 체크를 해봐야겠다. 

피부 체온은 바깥 온도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몸속 깊은 곳의 심부체온(core body temperature)은 거의 일정하다. 심장, 간, 신장과 같은 인체 깊숙이 자리한 장기들의 온도는 항상 37도로 유지된다. 보통 아침보다 저녁 심부체온이 높고, 자는 시간에 조금 낮아지지만,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루 0.5도 이내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침입자들이 감염을 일으키면 체온이 올라간다. 열이 나면 불편감을 줄 수 있지만 열 자체는 별로 해롭지 않다. 체온 상승은 면역 반응을 증강시켜 인체가 병원성 미생물과 더 잘 싸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완벽하지 않다. 항생제나 약의 도움 없이는 감염을 물리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체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40도 이상 고열이 계속될 때는 자연치유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할 때다. 드물지만 약 부작용으로 열이 날 때도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 항고혈압약, 조현병 치료제를 복용할 때 약으로 인해 열이 날 수 있는데, 특히 이런 약을 복용하면서 과도한 운동을 하면 고체온증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약 때문에 체온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도 그대로 방치하면 치명적이다. 약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수 있다. 폭염 속 야외활동이 위험한 것도 마찬가지다. 덥고 습한 날 과도한 운동을 하면 심부체온이 올라 매우 위험하다. 체온은 올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거다.

생강차를 마셔도, 뜨거운 음료나 매운맛 음식을 먹어도 심부체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뜨거운 음료의 열기나 매운맛 성분의 자극으로 인해 피부 혈관이 확장되고 그로 인해 피부 표면의 체온은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술을 마시면 혈관 확장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더운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열 손실이 늘어날 수 있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에서 차가운 음료와 뜨거운 음료를 주고 실제 실험한 결과를 보자.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 처음엔 땀난다. 바깥 공기가 차고 건조한 환경에서 땀이 증발하면서 몸을 식힌다. 결과적으로 차가운 음료를 마셨을 때보다 뜨거운 음료를 마셨을 때 열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면 당장은 더운 느낌이 들지만 이내 땀이 증발하며 피부 표면이 시원해진다. 동남아시아처럼 연중 날씨가 무더운 지역에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추위를 더 예민하게 느낀다고 체온이 낮은 건 아니다. 보통 여성이 추위에 더 민감하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심부체온 측정값은 비슷하다. 오히려 여성이 조금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체온보다 피부 온도를 통해 추위를 더 잘 느낀다. 기온이 내려가면 여성의 손발이 더 빠르게 차가워져서 손의 표면 온도가 3도 가까이 낮게 측정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배란기가 되면 추위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쾌적하게 느끼는 실내 온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심부체온은 실내 온도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매운맛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에 추운 나라에선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겨울이 긴 캐나다에선 크림과 설탕을 두 스푼씩 넣은 더블더블 커피가 어찌나 인기인지 결국 사전에까지 올랐다. 본래 사람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원은 음식이다.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열을 더 많이 낼 수 있다. 많이 먹는 자에게 추위란 없다고 내가 가끔 농담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추위를 덜 탄다고 더 건강해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맞다. 내 말이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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