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은 동네 이름만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의 이곳저곳에 붙어있던 기무골, 장안이, 미루터, 각굴, 됨빼미, 사나다리, 초당골짜기 같은 다양한 이름도 함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이름들은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곳에 드나들면서 그곳의 지리적 특징에 따라 자연스레 그리 붙였을 것이다. 이런 이름들은 동네 이름들과는 달리 행정지도 같은 곳에도 등장한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영원히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흔적도 없어진 그 이름들이 그립고 애처러워 짧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역시 챗지피티의 설명을 인용하지만, 설명의 타당성은 ‘믿거나 말거나’이다.
먼저 동네 뒤쪽에 있는 동남향의 낮은 언덕을 ‘기무골’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 볕이 잘 들어서였는지 산소 몇 기가 있었다. 쳇지피티는 김씨 집안과의 관련성을 제시했지만
우리 동네가 이씨 집성촌인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김이 자주 서려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서 독쟁이로 가려면 ‘장안이 고개’라는, 높지는 않지만 좀 긴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고갯길 좌우에 있는 나무들 때문에 늘 어둑어둑해서 넘을 때마다 웬지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에는 그 고개를 넘다가 귀신이나 여우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었다. 챗지피티는 ‘장안이 고개’는 “독쟁이 같은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인도하는 고갯길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고개 너머에 ‘독쟁이’라는 동네가 있긴 했지만, 작은 동네에 불과했기에 이 해석에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각굴’은 “이름 그대로 꺾이고 각(角)진 골짜기다. 물길이 한 번에 내려가지 않고 방향을 틀며 흐르는 곳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됨빼미’는 “깊고 눅진한 저지대, 즉 물이 잘 고이고 땅이 무른 곳으로, 논이나 습지로 쓰인 땅”이라고 한다. 이 설명은 실제 상황과 딱 맞는 것 같다. 이처럼 땅 이름들은 그 땅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명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나다리’는 “둑을 넘거나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오르내리던 험한 통로로, 짐을 지거나 나이가 든 이들이 늘 조심해야 할 곳”이란다. 실제로 논 아래 작은 개울은 ‘작은 사나다리’, 멀리 큰 논 밑에 있는 개울을 ‘큰 사나다리’라고 불렸다.
마지막으로 ‘초당골짜기’는 풀로 엮은 작은 움막이 있던 골짜기”라고 한다. 움막을 본 기억은 없지만, 더 전에 그런 집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초당골짜기에는 물이 풍부해서 동네 여자들이 바가지로 물을 퍼서 빨래를 할 수 있는 우물이 있었다. 물이 흘러 넘쳐 만들어진 논에는 미나리, 그리고 돗자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왕골이 저절로 자라곤 했다. 동네 앞 논이 많은 곳에 ‘방아다리’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방아나 다리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더 옛날에는 물레방아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처럼 동네 구석 구석에 이름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농민들의 삶이 땅에 가까웠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삼바지, 한둘, 매밭이란 동네 이름을 이번에 추가하기로 한다. 장안이 고개를 넘어서 좀 더 가면 ‘삼바지(삼받이)’라는 동네와 ‘한둘’이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삼바지에는 한약방이, 한둘에는 한의원이 하나씩 있었다. “‘삼바지’는 길과 골이 세 갈래로 갈라지거나 모이는 마을이고, ‘한둘’은 집이 한두 채 있는 동네였을 것”이라고 한다.
‘매밭’이라는 동네는 기무골 뒷산을 넘으면 나오는데, 이는 “풀을 매며 일군 밭이라는 뜻으로, 김포 검단처럼 물과 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매밭이 곧 개간의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 매(罵)가 많이 날아와서 매밭이라고 불렀나 생각했었다.
이런 동네 안 이름들과 동네 이름들을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공간 구조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사라진 지명들을 다시 불러보면 우리가 어떻게 땅을 이해하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 인걸(人傑)은 물론이고, 산천마저 의구(依舊)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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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