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교육학회의 출범
2025년 11월 21일. 대한약사회 강당에서 한국약학교육학회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축사를 맡게 된 것을 계기로 나는 1967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한 이후 줄곧 품어 온 약학교육에 대한 생각의 일부를 전하고자 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는 “왜 이렇게 학과목이 많고 수업시간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졸업할 때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교수 생활과 정년퇴임을 거치며 오래 고민한 끝에 그 원인이 약학교육의 지향점이 한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방향을 동시에 추구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약학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제약학, 용약학, 창약학이라는 성격이 다른 세 가지 교육목표가 동시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약학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국가 제약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제약학(製藥學)’ 교육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약물 사용을 위한 ‘용약학(用藥學)’, 즉 임상약학(臨床藥學) 교육이었다. 약국과 병원 현장에서의 약사 역할을 생각하면 약물의 적정한 사용을 위한 이 교육은 필수적이었다. 약학대학을 6년제로 전환한 명분 역시 임상약학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국가 보건의료산업 발전과 함께 필요성이 커진 ‘창약학(創藥學)’, 즉 신약개발(新藥開發) 관련 교육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지향점이 다르지만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약학의 핵심 영역이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복합적인 목표를 제한된 교육 기간 안에 모두 충실하게 담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3대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마스터플랜 없이 필요할 때마다 과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되다 보니 교육과정은 점점 복잡해졌고 학생들은 약학의 목표가 무엇인지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약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커리큘럼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핵심은 3대 목표를 교육연한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편하는 것이다. 3대 목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제한된 기간에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공통적으로 필요한 ‘핵심공통지식(核心共通知識)’만을 엄선하여 교육해야 한다. 이때 내용이 빠지거나 중복되지 않도록 정밀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과목은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약사국가시험 과목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 핵심공통지식을 선정한 뒤에는 6년 동안 학년별로 교육의 깊이를 단계적(段階的 深化)으로 높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졸업 후 제약·용약·창약 중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될 것이다.
최근 약학대학 교수들의 연구는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연구는 약학의 3대 목표와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새 커리큘럼에 따라 신임 교수를 채용해 나간다면 이러한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교수와 학생들의 정기적인 약업현장 견학(見學)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약국, 병원, 제약공장, 연구기관, 규제기관 등 약업의 다양한 현장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교수는 생동감 있는 강의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를 제대로 지도하기도 어렵게 된다. 학생들 역시 견학을 통해 자신이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더 깊이 고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약학교육평가원이 대학 평가 시 현장견학 여부를 반영하면 좋겠다.
새로 출범하는 약학교육학회가 약학교육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효과적인 교육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약업계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졸업생뿐 아니라 교육학자들도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약대 교수만이 교육 전문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특히 커리큘럼 개혁에서는 교육학 전문가의 기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새 학회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