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둘째 아들로부터 ‘실(實)없는 소리, 아재개그, 허튼 소리, 유머가 많은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가 근엄한 훈계를 많이 하는 가정이 별로 화목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일종의 훈계공포증 때문에 부모와 함께 있기를 힘들어 한다. 사실 훈계의 효과도 의문이다. 훈계의 내용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자식도 많고, 부모가 꼭 옳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나친 훈계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 집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는 늘 따듯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내심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다. 젊으셨을 때의 아버지는 자주 이것 저것 지적하고 나무라셨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몸과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럼 나는 우리 두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궁금한 나머지 애들이 중학생 정도가 되었을 때 물어봤다. “너희들은 내가 집에 있는 게 좋으냐, 없는 게 좋으냐?” 고.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집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
지금은 늙어서 근엄할 힘도 없지만, 나는 평생 아이들에게 근엄해서 불편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배경에 두 개의 그림이 있다. 하나는6촌 형님 세 분이 당신들의 아버지(내게 5촌 당숙 아저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집에 오신 그림이다. 인천에서부터 김포 우리집까지 제법 먼 비포장 길을 네 분이 마치 친구처럼 사이 좋게 타고 오셨다. 이 장면은 1950~60년대의 봉건 시대에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멋있었다. 나도 나중에 꼭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 그림은 1960년대 당시 인기 대중 잡지인 ‘아리랑’ 에서 본 화보였다. 유명한 남자 배우인 김동원씨가 아들인 가수 김세환씨와 마치 친구 사이처럼 다정하게 당구를 치는 모습이었다. 당구를 치러 다니면 아버지에게 혼나던 시절이었으니, 이 화보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이런 계기들을 통하여 나는 이 분들(아저씨와 김동원씨)을 새 시대의 아버지 상(像)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지금껏 나는 아이들에게 근엄한 훈계 따위를 해오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너무 근엄하지 않다고 아내가 가끔 불평할 정도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애들은 훈계를 안 해도 건전하게 잘 성장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실없는 유머와 헛소리, 또는 아재개그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솔직히 가끔은 애들이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나는 둘째 아들의 말처럼 아버지의 비근엄주의가 대를 이어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둘째 아들이 전해준 다른 명언 세 개를 추가한다.
하나. 우리나라 운동 팀이 국제 시합을 할 때 중계 방송을 너무 객관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팀 반칙에는 관대하고 상대방 반칙에는 엄격하게, 다소 주관적으로 중계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 있다는 것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와 다투게 되면 아들은 지나친 객관성을 버리고 내 편을 들어 줄 것 같은 안도감(?)도 들었다. 자식과 부모 사이가 꼭 객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아들은 대선 투표하러 갈 때 부부 간에 서로 따른 후보를 찍으려면 아예 투표소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투표하러 가기 전에 굳이 갈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정치 문제를 가지고 대화하지 않는다. 대화가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셋. 누가 제 3자를 평할 때에 ‘사람은 착해‘ 한다면, 그 사람이 무능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착해 빠져서는 이 험한 세상을 못 산다’ 고 하지만, 나는 우리 손주들이 시집 장가 갈 때에 ‘폭삭 속았수다’ 의 애순이 아빠처럼 착한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