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해 새 살림을 차리면 이웃이나 친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른바 ‘집들이’인데, ‘집들이’란 ‘집에 들어감’ 또는 ‘남을 집에 들임’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집들이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축복하고 공동체와의 유대(紐帶)를 확인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혼부부가 집들이 초청을 하지 않으면, 신랑 친구 몇 명이 작당(作黨)하여 사전 연락도 없이 신혼집(혹은 신혼방)에 들이닥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가서는 식사는 물론 술과 노래, 춤으로 신혼부부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민폐(民弊)를 심하게 끼칠수록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 사이”라고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집들이는 신혼부부의 당연한 통과의례(通過儀禮)였다.
그때는 돌잔치, 생일잔치, 회갑연 같은 집안 행사도 모두 집에서 치렀다. 이런 행사들 또한 모두 일종의 집들이였다. 이러한 문화의 배경에는 (1) 대부분의 여성이 가정주부로 집을 지키고 있었고, (2) 외부에서 잔치를 치를 경제적 여유가 없었으며, (3)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家父長的) 인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곧 내가 신혼이던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아이들의 돌날이면 예외 없이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20평 남짓한 집(주택)의 방과 마루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아내는 밤새 준비한 갈비찜, 잡채, 떡, 국 등을 원형 자개상에 연신 올려야 했다. 잔치가 끝나면 몇몇 손님은 꼭 주무시고 가셨는데, 우리는 요와 이불을 펴드리며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까지 드려야 공식 행사의 제1부가 끝났다. 설거지는 그 이후의 몫이었다.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반화되고, 경제적 여유도 늘면서 가정주부를 혹사(酷使)시키는 집들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집들이 문화는 사라졌다. 이제 각종 잔치는 행사 전문 외부 업소나 식당에서 치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발이라도 맞추듯 때마침 여기저기 카페가 들어섰다. 경치 좋은 산기슭이나 물가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의 시설과 분위기는 웬만한 집보다 오히려 낫다. 사람들은 이제 손님을 집 대신 카페에서 만나려 든다.
집들이에서는 집주인이 바빠 손님과 대화할 틈이 없다. 사실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그런 민폐(民弊)성 집들이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에 카페에서는 초청자와 손님 모두가 부담없이 만날 수 있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 특히 여성들이 카페를 선호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어쩌면 카페는 여성들에게 해방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집들이는 일본처럼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문화로, 우리처럼 ‘남’을 두려워하지않는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카페 문화가 꽃피고 있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즉 사람을 조금은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교회 식구들과 근처 카페에 갔더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분위기가 특별히 좋은 곳도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다니 놀라웠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소소한 수다 떨기를 통해 서로 정을 나누고 축복하는 집들이 정신이 카페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어 카페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 같았다. 다행스러운 결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카페 문화는 옛날식 집들이가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기 연예인 두 명이 일반 가정집 초인종을 누르고 “저녁 식사 같이 하실까요?”라고 묻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우리 방송에서도 실제로 대문을 열어주는 집은 매우 드물었다. 아무래도 이 프로그램은 집들이 문화를 거부하고 카페 문화를 받아들인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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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