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침수와 누수문제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심창구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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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은 자기 자랑임을 미리 밝혀둔다. 
 

1.  침수(侵水)문제
 

1988년 강남구 자곡동에 길 새 좋고 남향(南向)인 벽돌집을 샀다. 집 앞에 제법 넓은 잔디 정원이 있었고 반(半)지하에는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이 집의 난방은 기름 보일러(燈油) 방식이라 지난 호에서 자랑한 ‘연탄 아궁이 개선 기술’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 집을 사서 한껏 좋아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아~ 이 집을 사셨군요”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배수(排水)가 잘 안되어 장마철이면 침수되는 집을 샀다고 혀를 차는 소리였다. 어쩐지 집을 보러 다닐 때 동네 복덕방 영감님이 자꾸 다른 집을 추천하더라니.. 실제로 그 집에 살아보니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아래층 뒷마당이 침수되었다. 세입자가 아예 양수기(揚水機)를 설치해 놓고 살 정도였다.
 

큰 걱정이었다. 반지하라 물을 도로 쪽으로 뺄 수도 없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침수의 원인이 무얼까? 비 오는 날 찬찬히 살펴봤더니, 뒷마당으로 떨어진 빗물이 건물의 왼쪽 모퉁이를 돌아 넓은 앞마당을 가로질러 집 밖의 집수구(集水口)로 흐르고 있었다. 경로가 이렇게 길다 보니 경사(勾配)가 완만해서 물이 신속하게 빠지지 못하는 것이 침수의 원인이었다.    
 

그럼 배수 경로를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빗물을 건물의 오른쪽 모퉁이로 흐르게 만들어 주면 배수 경로가 1/3 정도로 짧아지고, 이에 따라 배수 경사가 커지기 때문에 배수가 훨씬 빨리 될 것 같았다. 결론이 이에 이르자 나는 곧 물이 오른 쪽으로 흐르도록 뒷마당의 수평을 바꿔주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시멘트 한 포대를 사서 모래와 섞은 다음 뒷마당의 왼쪽면이 오른쪽면보다 조금 높아지도록 만들었다. 단돈(?) 10여만원을 들여 반나절 만에 끝낼 수 있는 매우 간단한 공사였다. 
 

그 후로는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우리집이 침수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수백만원을 들여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던 숙원 사업을 내가 해결하다니!. 동네 사람들은 그후 나를 조금이나마 우러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침수 문제를 속이고 다소 싼 가격으로 나에게 집을 팔고 뒷집으로 이사간 전 집주인의 시선에는 복잡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후로 한동안 나는 침수문제 해결 전문가라는 혼자만의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었다.
 

2.  누수(漏水)문제
 

그후 한동안 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반지하집 천정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누수 사건(?)이 발생하였다. 급히 동네에서 사람을 찾아 방수(防水) 공사를 부탁했더니, 한 사람이 큰 해머를 메고 와서는 대뜸 “여기를 까부술까요, 저기를 까부술까요?”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아니 어디서 누수가 되는 지부터 찾은 다음, 까부수는 공사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게 아니냐?’ 했더니, 자기는 누수 부위를 찾을 줄은 모르고, 주인이 부위를 특정해 주면 까부수는 공사를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주택의 누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어이가 없어 당장 그 사람을 돌려보내고, 나 혼자 해결책을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몇 날 며칠 간의 고뇌 끝에 드디어 한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 올랐다. 즉 ‘누수가 의심되는 부위에 페놀프탈레인 액 (이하 지시약)을 반 컵 정도 붓고 몇시간 후 누수액을 받아 pH를 알칼리성으로 조정했을 때 액이 빨간색으로 변색(變色)한다면 P액을 부었던 그곳이 바로 누수의 원인 부위라는 생각이었다. 바로 몇 군데 누수 의심 부위에 하룻밤 간격으로 지시약을 붓고 다음날 받은 누수액에 알칼리를 가했더니, 오직 다락방의 화장실 물통에 지시약을 넣고 받은 누수액만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물통에서 누수가 일어났던 것이다. 당장 물통의 꼭지를 돌려 잠그자 누수가 바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이 지시약법(indicator method)은 인류(?)가 개발한 누수탐지법 가운데 가장 간단, 저렴하고 비파괴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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