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연탄 아궁이 개량 기술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심창구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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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아궁이 개량 기술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집안일 중에 잘했던 일, 즉 혹시라도 아내나 자식들 앞에서 “나도 한때는 말이지!” 하며 은근히 자랑할 만한 일이 있었나 곱씹던 중, 문득 신혼 초 수유리 단독주택에서 아궁이를 고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75년 겨울, 신혼방은 유난히 추웠다. 온돌방 바닥이 워낙 냉골이라 요와 이불을 아무리 깔아도 몸이 떨렸다. 석유 스토브를 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어느 날, 나는 반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가 방이 이렇게까지 추운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살펴보니,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연탄의 열기가 방의 고래로 제대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길을 고래 쪽으로 유도하는 철제 두꺼비의 목이 짧고 철판도 얇았다. 열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철물점에 가서 목이 길고 두꺼운 두꺼비를 구입해 교체하고, 열이 샐 만한 틈은 모두 진흙으로 메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길이 고래 속으로 잘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날부터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져 안방이 훈훈해졌다. 대성공! 이제는 살 만한 방이 되었다.
 

기세를 몰아 굴뚝에도 손을 댔다. 짧고 틈이 벌어진 굴뚝을 한 층 높이고, 갈라진 부분을 메웠다. 그때만 해도 사다리 없이도 지붕을 사뿐히 오를 체력이 있었다. 이어 다락에 올라 안방 종이천장 위를 들여다보니, 기왓장 틈 사이로 하늘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까운 열기가 종이천장과 그 위 빈 공간을 통해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단독주택 지붕 구조는 이처럼 매우 부실했다. 얇은 송판 조각들을 얼기설기 대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형태였다. 그렇다고 지붕을 새로 다 고칠 수는 없었다. 그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종이천장 위에 스티로폼을 밀어 넣어 보기로 했다. 그 시절엔 스티로폼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신혼살림에 딸려온 스티로폼 박스가 몇 개 있어 이를 재활용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개량 작업이 끝나자, 그 춥던 안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창문을 열고 자야 할 정도로 방이 더워진 것이다. 대성공! 이 일로 나는 아내에게 ‘제법 괜찮은 남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평가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2년 뒤인 1977년, 우리는 관악구 낙성대동에 있는 작은 단독 기와집을 약 750만원을 주고 사서 이사했다. 그 집엔 방이 세 개 있었는데 역시나 겨울엔 방마다 추웠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수유리 집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두꺼비를 교체하고 불길이 새는 틈을 진흙으로 메웠더니 역시 방이 금세 따뜻해졌다. 이제 나는 연탄 난방에 관한 한 제법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연탄 아궁이를 이용한 난방법은 기본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연탄의 질이 좋지 않아 하루에 3번 연탄을 갈지 않으면 불이 꺼지곤 했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한번 일어 나 연탄을 갈아야 했는데, 매번 아궁이가 있는 지하실에 내려 가서 세 방의 연탄을 가는 것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또한 당시에는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연탄의 일산화 탄소 가스가 방바닥 균열을 통해 방으로 스며 들어와 방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빈발했었다. 연탄 아궁이 난방법은 방바닥 밑으로 살인가스를 흐르게 하는 흐르는 무서운 난방법이었다. 
 

그래서 연탄 아궁이대신 연탄보일러를 써서 난방을 하는 방법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집 안이 아닌 집 외벽에 설치하는 연탄 보일러는 가스가 실내로 스며들 위험이 없어 안전하였고, 보일러 하나에 연탄 세 장을 넣으면 방 세 개를 동시에 덥힐 수 있어 훨씬 편리했다.
 

그 후 1988년, 현재 살고 있는 자곡동 집(당시 시세 약 1억 원)으로 이사했을 때는 연탄 보일러 대신 기름보일러가 가정집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었고, 적어도 2007년부터는 도시 가스 보일러가 우리집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만약 지금까지도 연탄 아궁이를 사용하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아마 연탄 아궁이를 잘 고치는 기술자로 동네에서 어깨에 힘 좀 주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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