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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 동안, 근대 서양의약학이 일본에 도입된 경로인 규슈 지방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방문한 모든 곳이 다 의미가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구마모토 현 오쿠니정에 있는 기타자토 시바사브로 (北里紫三郞) 기념관은 또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다.
기타자토는 뛰어난 세균학자로 작년부터 일본의 천엔짜리 지폐에 초상이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8살 때에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해 2년간 외가 쪽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는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는 대신 툇마루 걸레질을 시켰다고 한다. 키타자토는 툇마루에서 광이 날 정도로 성실히 걸레질을 했다고 한다.
훗날 그가 유명한 사람으로 성공하자 구마모토 현에서는 소학교 1, 2 학년 도덕 교과서에 이 이야기를 실어 놓고 이처럼 ‘성실’하게 살아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소년 기타자토가 무릎을 꿇고 열심히 걸레질하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미담(美談)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 사람다운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옆을 보니 그가 걸레질했던 바로 그 툇마루 2장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와! 아무리 세세한 것까지 전시를 잘 하는 일본 사람들이지만 그 툇마루까지 떼어서 전시할 줄은 미처 몰랐다.
문득 이어령 선생님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란 책의 한 구절이 머리에 떠오른다. 오래 전에 일본 기술자가 한국기술자에게 무슨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유의사항 10가지를 설명하는데, 한 7, 8가지쯤 설명한 시점에서 한국 기술자는 슬슬 궁둥이를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한국 기술자는 “대충 기술의 원리를 알았으면 됐지 고지식하게 10가지를 꼭 배운 그대로 할 필요까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단다. 일본 기술자의 입장에서는 10개가 다 필요해서 가르치는 것인데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는 한국 기술자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매뉴얼에 적혀 있는 그대로 따르는 것을 성실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또 일의 성패(成敗)에 못지않게 과정 중에서 매뉴얼을 성실하게 따랐느냐 여부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설사 일의 결과가 좋게 나오더라도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이 큰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한다.
반면에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 왔다. ‘대충 해라’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의 중요성만 강조해 왔다. 적어도 과거의 우리에게 과정이란 빨리 빨리 통과해야 할 단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본의 정신이 ‘과정을 꼼꼼하게’였다면 우리의 시대 정신은 ‘빨리 빨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이 ‘빨리 빨리’ 정신은 분명 우리나라를 이토록 빠른 기간에 선진국으로 ‘압축 성장’ 시킨 동력의 하나이지만, 성수대교와 삼풍 아파트 붕괴로 상징되는 부실, 졸속, 날림 공사로 이어져 막대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 우연히 옛날 영상 하나를 보았는데, 시골에 가 있는 전직 대통령이 동네 어린이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작은 일을 성실하게 잘 하면 사람들이 더 큰 일을 맡긴다. 큰 일을 하려면 우선 작은 일을 성실하게 해 버릇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빨리 빨리’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과정의 중요성까지 몸에 익혀 과정 중시와 결과 중시의 사고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한번 질 높은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는 단연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혹자는 일본을 그대로 모방하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답답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국민의 유전자 특성상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일본만큼 꼼꼼한 사회가 되지는 못하리라 확신한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일본의 과정 중시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툇마루 걸레질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을 제대로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나라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