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심창구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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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

1967년 학번인 내가 약대에 다닐 때에는 (즉 라떼는) 실습 시간에 견학을 갈 때가 많았다. 종근당이나 한독약품 또는 유유산업 같은 제약회사의 공장은 물론, 삼양라면, OB맥주, 해태제과, 애경유지 같은 식품, 화공(化工) 회사의 공장, 그리고 구의동 수원지(水源池), 신탄진 연초공장, 부여 홍삼 공장 같은 곳에도 견학을 갔었다.  

학교 측에서 이처럼 견학을 많이 보낸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돈 안 쓰고 실습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근 조윤상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에 의하면, 당시 실습 담당 조교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안 들이고 실습을 시킬 수 있을까를 늘 고심했다고 한다. 예컨대 유기제약(有機製藥) 실습에서는 원료 화학약품의 가격이 싸면서 반응 시간이 긴 합성(合成)을 과제로 선택하는 것이 노우하우(know-how)였다. 금방 합성이 끝나는 반응을 고르면, 남는 시간에 다른 실험을 시켜야 해서 다시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어떠했든, 학생들은 외부 견학을 학내 실습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리포트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견학은 반쯤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견학을 간 곳은 구로동에 있는 종근당 공장이었다. 아마 1967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거기에서 처음으로 토끼 항문에 온도계를 꽂아 파이로젠 테스트(pyrogen test)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테스트는 그 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견학은 지식과 견문을 넓히는데 유용하였다.  

그러나 그 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견학 후 받은 대접이었다. 회사(종근당)는 우리들 전원(약 80명)을 고급(?) 버스에 태워 영등포 시내로 데려가 비싼 설렁탕 한 그릇씩을 사 주셨다. 그 버스가 회사 버스였는지 전세버스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1969년인가 위생화학 실습시간에 도봉구에 있는 삼양라면 공장을 견학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삼양라면이 국내 유일의 라면 회사로서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정부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쌀 대신 밀가루 음식, 즉 분식(粉食)을 장려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 ‘삼양라면’은 새로운 형태의 간편 식품(fast food)으로 국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면(麵)을 돼지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라면을 끓여 놓으면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 고소하고 맛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오리지날 ‘삼양라면’을 즐겨 먹는다. 내게는 그 후에 나온 값비싼 사발면이 더 맛이 없었다.

라면 공장 건물 밖에는 라면 생산용 돈지(豚脂) 드럼통이 작은 산더미처럼 야적(野積)되어 있었다. 나중에 이 기름이 공업용이냐 식품용이냐 하는 문제로 언론에서 난리를 친 일도 있었다.

공장 견학이 끝나자 회사측은 기념으로 라면 다섯개가 들어 있는 포장(德用包裝) 한 개씩을 주었다. 당시 라면 다섯 개는 학생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횡재(橫財)를 한 기분에 우리들 너댓명은 버스를 타고 뚝섬으로 갔다. 뚝섬에는 1학년 때 2주에 한번씩 하루 종일 실습을 했던 약초원(藥草園)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원지가 있었다.

뚝섬에 도착해 보니 벌써 점심 때가 지났다.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는 우리들 앞에 라면이나 국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나타났다. 그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 라면 5개 다 드릴 테니 2개만 끓여 주실래요?”라고 흥정(?)을 걸었다. 다행이 아주머니가 응해 주셔서 각자 라면을 배불리 먹고 유원지에서 놀다 온 생각이 난다.

역시 그해의 위생화학 실습 시간에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OB 맥주 공장을 견학한 일도 생각난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발효 탱크를 보았다. 그러나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맥주를 공짜로 시음(試飮) 할 수 있었던 것과, 견학이 끝났을 때 OB맥주라고 쓰인 유리컵인지 재털이인지를 한 개씩 기념품으로 받은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자주 견학을 다닌 것이 문제(?)였다면, 요즘에는 반대로 너무 현장 견학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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