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종속변수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심창구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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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

지난 5월 2일 제대(1974년) 50주년을 기념하여 군대 동기 몇몇이 전주에서 1박2일 모임을 가졌다.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 이 모임은 올해로 35회가 되었다.

모임 둘쨋날 아침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함께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한 전우의 아내가 남자들 식탁에 와서 “콩나물 좀 더 갖다 드릴까요?” 물었다. 남자들은 다들 “됐어요” 라고 사양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남자들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콩나물 접시 하나를 갖다 놓으며 “더 드세요” 하는 것이었다.  

유레카! 순간 나는 크게 깨달았다.

아!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다 남편의 의견을 듣지 않는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젊었을 때 아내와 옷을 사러 갔을 때, 아내가 나보고 내 옷을 고르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 골랐더니 그건 내게 안 어울린다며 결국 아내 마음대로 내 옷을 샀다. 그 후 나는 옷을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커피숍에 갔을 때 우유 없는 메뉴를 골라 달라고 부탁해 버릇했더니, 이제는 아내 없이 혼자서는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식당에 가서 내가 고민 끝에 메뉴를 고르면 아내가 ‘당신 그거 싫어하잖아!’ 하곤 한다. 순간 ‘내가 이거 싫어하던가?’ 헷갈린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메뉴 결정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얼마나 편한 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대부분 아내와 함께 다닌다. 젊었을 때는 아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녀 주길 바랐다. 아내가 나의 종속변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지금은 내가 아내의 종속변수로 산다. 아내와 외출 시 내가 주차하고 나면 벌써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변수인 아내가 그 새를 못 참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종속변수인 내가 찾아 나서야지 도리가 없다. 경륜이 쌓이면서 아내를 찾아내는 노우하우도 늘었다. 옷 가게에서 발견할 확률이 제일 높다.  

나는 아내의 종속변수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익숙하다.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남편을 떼어 버리고 혼자 나다니는 아내가 대세(大勢)인 오늘날, 아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직도 자신이 독립변수인 줄 알고 아내를 휘어잡으려 발버둥치는 남편들을 보면 안쓰럽다. 아내를 휘어잡아?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라, 그런 남편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 가정은 좀 위태한 상황이 아닐까?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부터 아내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77세 영감이 체득(體得)한 교훈이다.

왜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남편은 아내를 못 이긴다. 오죽하면 “청년이여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결혼 전에 바꿔라, 결혼하면 티브이 채널 하나 네 마음대로 못 바꾼다”라는 말이 있겠는가?

여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명 외에도 차고 넘친다. 예컨대 대부분의 아내는 암에 걸린 남편을 극진히 간호한다. 반면에 남편들은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아내 곁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암 수술 전문의는 ‘남자들은 다 나쁜 놈들이예요’라고 했다.

한 실험에서 침팬지 모자(母子)를 작은 방에 가두어 놓고 방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아궁이에 불을 땠더니 엄마는 자식을 머리에 이고 발을 동동 구르더란다. 다음으로 부자(父子)를 넣고 관찰했더니 글쎄 아버지가 태연히 아들을 깔고 앉았더란다. 이처럼 부성애는 모성애의 발바닥도 못 쫒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해력, 기억력, 수다 등에서도 남편은 결코 아내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한다. 내 생각이 아니다. 어느 원로 교육학자의 주장이다. 이제 남편들은 다 항복하자. 더 이상 버티지 말자. 아내가 콩나물을 갖다 주면 잠자코 먹자.

수명, 사랑, 이해력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아내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순종하는 자유를 향유하자. 유비무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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