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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0월 13일,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80년사(이하 천과연 80년사)’ 발간 기념회가 서울대 약대 20동에서 열렸다. 서울대 약학역사관이 발행한 이 책에는 서울대 약대 이상국 학장의 발간사, 천과연 오동찬 소장의 서론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박주영 학예사(전 서울대 약학역사관 학예사) 등이 쓴 1. 천과연의 현황, 2. 생약연구소 및 3. 천과연 시절의 역사가 나온다. 그 뒤에 도판목록, 역대 소장 및 전현직 교수명단, 연구실 소개, 역대 연구성과 목록 등이 실려 있다. 총 388쪽의 이 책의 가격은 2만원이다.
천과연의 역사는 1939년 12월 27일 출범한 경성제국대학(경성제대)의 부속 생약연구소(이하 생약연구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소의 모태(母胎)는 다시 1936년 경기도 개성에 개소(開所)된 경기도립 약용식물연구소와 1938년 개소된 경성제국대학 약초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에 설립된 연구소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생약연구소에서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조선인)들이 인삼을 비롯한 한약재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생약연구소의 초대 소장은 경성제대 의학부 약리학 제2강좌의 스기하라 노리유키(杉原德行) 교수였다. 그는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영국, 미국 등에 유학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26년 경성제대 의학부 교수로 임명된 사람이다.
광복 이후에는 오진섭(경성제대 의학부)을 비롯한 우린근(경성약전), 한구동(조선약학교) 등이 바톤을 이어가며 연구소를 정상화시켰다. 생약연구소의 이름은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 생약연구소’로, 1992년 3월에는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로 바뀌었다.
2001년 9월 서울대학교의 학제 개편에 따라 천과연의 주관기관이 약학대학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천과연 교수들의 소속기관도 2001년 11 월 1일부로 약학대학 제약학과로 변경되었다.
최근 국내에서 약학의 역사와 관련된 책자들이 잇달아 발간되고 있어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혹시 이런 흐름에 서울대 약학역사관과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의 그간의 노력이 일조(一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에 이상국 서울대 약대 학장의 발간사를 다소 가감하여 소개한다.
‘천과연 80년사’를 발간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1939년 12월 27일 개성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를 모태로 출발한 천과연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천연물/생약 연구의 가장 오래되고 최고 수준의 연구소로서 설립 초기부터 생약을 비롯한 천연물로부터 생리활성 물질의 탐색 및 천연물 신약개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초기 태동기와 광복 및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연구소를 지키고자 노력한 선배 교수님들의 크나큰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천과연은 생약연구소(1946~1991)에서 천연물과학연구소(1992~현재)로 그 이름을 바꾸면서 연구소재를 확장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천과연은 우리나라 약학분야에서 초기의 연구를 선도한 기관입니다. 천과연은 약학 도입 초기에 접하기 힘들었던 최첨단 분석기기를 도입하여 많은 연구자에게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WHO 생약피임제 개발연구 중점연구소, UNESCO 동남아지역 천연물화학 연구센터, WHO 전통약물연구협력 기관 등으로 지정 받음으로써 국제적인 지명도를 높여 왔습니다. 한편 신동의약(新東醫藥)개발 주관연구 기관,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전문기관으로 지정 받는 등 주요 대형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천연물연구 중심기관의 위상을 굳건히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천과연이 보존하고 있는 한약 표본(일명 이시도야 石戶谷勉 콜렉션 포함하여 1만 5,000여 종)은 1930년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수집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한약의 기준이 되는 귀중한 표본입니다.
천과연은 서울대학교 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한 연구소로 앞으로도 천연물 관련 연구 및 교육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