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라, 일본’의 마무리
심창구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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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3년반 동안의 동경대학 유학과 그 후 40년간의 교류를 통하여, 일본 문화는 일본 사람들이 사람(人 = 남)을 두려워하는 바탕 위에 형성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 사무라이의 칼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약창춘추’를 통하여 약 15편의 글로 이런 주장을 펴 왔는데, 오늘은 그 내용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아마추어의 서투른 일본론이라 일부 견강부회(牽强附會)나 침소봉대(針小棒大), 또는 지나친 단순화도 있을 것이지만, 내가 본 일본 사람, 또는 일본문화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사람이 친절하고 말이 곱다 
일본어에는 욕이 없다. 서로 만나면 저번에 신세진 것에 대한 감사부터 표한다. 은혜를 모르는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2. 능동태 대신 수동태나 특수 사역동사 등을 써서 복잡하게 말한다 
‘생각합니다’ 대신 ‘생각됩니다’, ‘찾아뵙겠습니다’ 대신 ‘찾아뵙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여름 휴가 가는 주인이 자기 식당 문에 ‘3일간 쉬게 해 주십시오’라고 쓴 안내문을 붙인다. 내가 주어가 되는 능동적 표현을 하기에는 사람들, 즉 남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3. 식당에서 도시락을 시켜먹고, 쟁반에 담아 내온 음식을 그대로 놓고 먹는다 
상대방 음식과 내 음식이 확실히 구분되어야 상대방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찌개처럼 같이 먹는 음식을 싫어한다. 사무라이가 먹는 찌개에 숟가락을 넣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젓가락도 끝이 상대방을 향하지 않게 옆으로 놓아야 한다. 무가가 될 우려가 있어 쇠젓가락을 쓰지 못하고 나무 젓가락만 쓴다.

4. 매우 보수적인 나라가 되었다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다. 가게의 이전이나 확장도 잘 안 한다. 남들을 자극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화폐에 나오는 인물을 정하는데도 몇 년씩 눈치를 본다.  

5. 민주주의가 발달하였다
칼이 두렵기 때문에 상대방이 왜소하고 힘이 없어도 존중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었다. 오야붕도 꼬붕을 깔고 앉지 않고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품는다. 장기판의 졸(卒)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잡히는 순간 상대방의 졸이 되어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6.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일본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놓고 거절하기 두려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외교 시 상반되는 2개의 주장을 애드벌룬처럼 띄워 놓고 대세가 기우는 쪽을 선택한다. 미국과 소련 간에 전쟁이 나면 언제 어느 쪽으로 어느 정도 가담하는 것이 일본 국익에 가장 좋을까를 판단하는 것이 일본 수상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덕목이라고 하였다.

7. 매뉴얼 공화국이 되었다
수시로 범사에 대한 매뉴얼을 업데이트하고, 철저하게 그 매뉴얼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매뉴얼대로 했다면 면책(免責) 된다. 융통성은 금물이다.

8. 미리미리 준비한다
행사 전에 준비 다 해 놓고 예행연습까지 해 봐야 한다. 실패 시 책임 추궁이 무섭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한일간의 사전 준비가 현격하게 차이났다.

9. 긴장과 질서의 나라가 되었다 
명함, 제복, 다도(茶道), 선물 등 범사에 엄격한 질서가 있다. 국익을 위해 입을 다물라 하면 모두 입을 다무는 전체주의적 긴장이 보인다.

10. 여러 신(神)을 믿는다.
사람에 의지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나 절에 가서 기도할 때, 종을 쳐서 신을 깨워 놓고 기도할 정도로 신도 제대로 믿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와 같이 극동(極東)에 위치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문화 근본이 우리와 매우 다르다. 즉 일본은 사람을 두려워하나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한일 문화의 차이를 낳은 것은 아닐까?   
한 나라의 문화를 다른 나라의 잣대로 함부로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평가해선 안된다. 문화는 각 나라마다의 환경과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유익하고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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