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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약물체내동태학과 생물약제학을 주로 공부했다. 교수가 된 다음에는 이들과 함께 약제학의 3번째 새 물결인 약물송달학(drug delivery system, DDS)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DDS의 재료가 되는 폴리머(polymer)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아가 지구촌의 대표 국가인 미국을 경험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88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당시 우리 약대의 고 유병설 학장님의 추천을 받아 미국 인디애나주 West Lafayette시에 있는 퍼듀대(Purdue) 약대의 박기남 교수 연구실을 연구 차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대 약대 4년 후배인 박교수는 폴리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아내와 두 아들이 나와 동행하였다. 부모님을 모시며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장기간에 걸친 미국 여행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나는 이때 J. Pharm. Sci. 에 논문을 실었던 제자 J 군도 데리고 가고 싶었다. J군은 동아제약 연구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에게 최신의 폴리머 과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회사나 그에게 바람직할 것 같았다. 그러나 회사가 J 군의 유학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회사 사정이 여의(如意)치 않았겠지만 아쉬운 일이었다.
퍼듀대학에 가 있는 동안, 주중(週中)에는 연구실에 나가 실험을 하고 주말에는 미국 각지로 여행을 다녔다. 실험으로는 효소에 의해 소화되는 팽윤성 하이드로젤(enzyme-digestable swelling hydrogel) 정제를 만들었는데, 내 능력 부족으로 생각만큼 연구가 잘 진전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약 10개월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1989년 시카고에서 열린 CRS(Controlled Release Society) 학회의 프로시딩에 게재하고 구두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연구의 상세한 내용을 정식 논문으로 학회지에 발표하지는 못하였는데, 이 점은 나를 초청해 준 박 교수에게 지금까지 미안하게 생각한다.
시카고 학회에 참석해 보니 폴리머 화학자들은 약학자들과 달리 폴리머의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안전성은 폴리머의 기능성이 확인된 다음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새로운 폴리머의 다양한 기능을 발견해 내고 그 기전을 규명하는 ‘재미(why)’를 연구의 주된 동기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부족하여 응용성 (how to apply)이 없는 폴리머에는 애초부터 큰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물론 ‘재미’는 시대를 불문하고 순수과학자(기초과학자)들의 변함없는 연구 동력이다. 그러나 응용과학자마저 ‘재미’에 빠져 ‘결국에는 사용할 수 없는 물질’ 연구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응용과학자에게는 ‘응용성’이 가장 중요한 연구의 동기인데, DDS용 폴리머의 응용성은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첫번째 관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에게 늘 안전성을 최우선시 하는 약학 고유의 시각으로 폴리머를 바라봐야 한다고 가르쳤다. 소금(약학자)이 짠 맛(안전성 중시 태도)을 잃으면 무엇에 쓰리요!
우리 부부는 미국에 가기 전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퍼듀대학에 가 있는 동안, 아내더러 퍼듀 한인 교회에 나가 보자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거기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 학장을 정년퇴직하시고 첫 목회지로 그 교회에 오신 고 박창환 목사님을 만났다. 여러 면에서 훌륭하신 박 목사님을 만나 세례를 받고 믿음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 부부에게 크나큰 축복의 시작이었다.
그 교회에서 고 김영길 총장님을 비롯하여 N 교수, S 교수 등 한동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그 분들은 모두 온누리 교회 교인들이었다. 그분들과의 인연으로 1989년 귀국 후 우리 부부는 서빙고에 있는 ‘온누리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2004년에 장로가 되었다. 퍼듀대학을 거쳐 온누리 교회로 내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