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약물을 경구투여(經口投與)하였을 때의 혈중농도 프로필에 2개의 피크(peak)가 나타나는 현상에 관해 연구한 내용을 소개한다.
나는 1988년에 수행한 생동성시험 결과로부터 라니티딘 정제(tablet)를 복용한 지원자의 혈장 중 약물농도-시간 그래프에 2개의 피크가 보이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기존의 약물동태학 이론에 따르면 1개의 피크만 보여야 한다. 실제로 그동안의 논문에는 1개의 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험에서 나타난 피크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2개였다. 너무나 놀라워서 기존의 문헌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니 예전 논문에도 이런 더블 피크(double peak)를 보이는 사례들이 적잖이 있었다. 다만 그 현상이 현저하지 않아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못한 것 같았다.
더블 피크의 패턴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달랐다. 어떤 사람에서는 첫번째 피크가 높았고, 어떤 사람에서는 2번째 피크가 더 높은 식으로 사람에 따라 패턴이 매우 달랐다. 즉 개체간(inter-individual) 변동이 매우 컸다. 그러나 같은 사람에게 1주일 후에 다시 같은 약을 투여했을 때의 피크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1주일 전과 같았다. 즉 개체내(intra-individual) 변동은 매우 작았다. 마치 사람마다 자기 고유의 지문(指紋)이 있듯이, 사람마다 고유한 혈중 농도 패턴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1) 경구투여한 라니티딘의 혈중 농도 패턴에 더블피크 현상이 나타나며, (2) 그 패턴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1주일 간격을 두고 재 시험하였을 때 나타나는 패턴은 지문(指紋)처럼 사람마다 고유하다는 사실을 학계 최초로 국제저널[J. Pharm. Sci. 78(12)(1989), 990-994 (그림 참조)]에 보고하였다.
더블 피크 현상에 매료된 나는 그 후 S, J, K, L(1990~1992) 등의 석사 논문 연구를 통해 그 기전 규명에 도전하였다. 나는 경구투여시 위액으로 용출된 약물은 2회로 나뉘어 흡수 부위인 소장 상부로 내려가서 흡수되기 때문에 혈중 농도 피크가 2개로 나타나는 것이란 가설을 세웠다. 즉 위내용배출(胃內容排出)의 2상성(二相性) 때문에 더블 피크가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이 가설은 쥐의 십이지장에 약물을 두 번으로 나누어 주입하면 2개의 피크가 나타남을 보임으로써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약물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혈중 약물 농도 곡선에 피크가 1개 또는 2개로 다르게 나타나는가? 이 의문에 대해서는, 2개의 피크가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각 사람에서의 약물의 흡수속도정수(ka)와 소실속도정수(ke)의 크기에 따라 피크가 1개로 보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하였다. 이 가설은 ka와 ke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 가설, 즉 ‘특수한 약물이나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면, 경구투여된 약물의 혈중농도 패턴은 원칙적으로 피크가 1개가 아니라 2개가 나타난다’는 가설은 약물동태학의 기본 전제를 바꾸어야 할 정도로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또한 ‘혈중농도 패턴이 사람에 따라 고유하다’는 사실도 매우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는 이와 관련된 일련의 연구 결과를 몇 편의 논문으로 학술지에 발표하고, 또 1992년 미국 캔자스대학 주최로 열린 제25회 Higuchi 심포지엄에서 구두(口頭) 발표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마음에 흡족할 정도의 논문을 쓰지 못했다. 후학(後學) 중 누군가가 이 가설을 멋지게 정리해 논문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